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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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지 말고 기대게 하라

2024-09-02 (월)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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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셀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에서 소년과 나무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삶의 교훈을 배우게 된다. 소년은 나무에게 열매를 달라고 했을 때 나무는 열매를 주었고,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나뭇가지를 주었고, 또 배를 짓고 싶다고 했을 때 나무줄기를 주어 배를 짓게 했다.

세월이 흘러 소년도 늙었고 나무도 늙었을 때 노인이 된 소년이 와서 이제 할 것이 없다고 했을 때 나무는 소년이 앉아서 쉬라고 나무의 그루터기를 내어 주었다. 이 이야기에서 나무는 소년에게 무엇인가 줄 때마다 “나무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라고 했지만, 소년은 이것저것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행복하다는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고, 책에 그런 글이 없었다. 소년이 올 때마다 소년은 무엇인가를 가졌지만, 나무는 소년에게 하나씩 둘씩 주어서 자기에게 남아 있는 것이 없어지기만 했어도 이 책은 늘 나무는 “그저 행복하기만 했습니다(The tree was happy)”라고 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늘 무엇인가 바라고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살아간다. 무엇인가 손에 들어 있어야 행복하고, 가져야 부자 같고, 이루어야 성공한 것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거나 남에게 주었을 때는 허전한 마음을 갖거나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삶의 형태이다.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도 많고, 크고, 높고, 빠른 결과를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고, 위대하고, 훌륭한 인생으로 평점을 내린다. 그래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소년처럼 무엇인가 얻으려 하고 가지려 하고, 만들고 성취하려는 그런 포부와 초조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소년이 나무에게 다가가서 기대어서 그 나무에게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것처럼 우리도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아니 가까운 가족에게나 멀리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할 때가 있다.


사실 구하고 얻으려는 사람치고 미안한 느낌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개중에 그렇지 않고 얼굴이 두꺼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말을 하고, 손을 내미는 그런 결정에 칭찬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고전 ‘흥부와 놀부’에서 오늘날 현대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형 놀부를 찾아가서 도와 달라고 하고, 살려 달라고 하는 흥부를 잘한다고 누가 칭찬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능력없는(?) 흥부보다는 놀부에 대한 부정적인 교훈이 더 드러나게 되는 이유는 기대는 사람을 모멸 차게 흥부를 밀어내는 놀부의 인색한 마음이 얄밉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남에게 기대지 않아도 먹고 살 만큼 넉넉함을 칭찬하기보다는 그 넉넉함 때문에 동생 흥부가 마음 편하게 기대어서 살도록 하게 하는 여유로움과 사랑스러움이 결여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놀부는 삶의 풍요와 성공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받기보다는 동생인 흥부를 형 놀부에게 기대어 의지하며 살게 하지 못하는 치졸한 그런 마음을 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디모데전서6:18-19)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하고, 키 큰 사람이 있으면 키 작은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생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적 관계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그 사람에게 의존적으로 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이야 오죽 불쌍한 인생이랴? 하지만 매일 찾아와서 나무에게 무엇을 달라고 기대는 그 소년을 밀어내지 않고 이것저것 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이 아닌가? 누가 무엇인가를 나에게 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와서 기댈 수 있다면 내 몸이 부서져도 그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에게 기대어서 살기보다는 남이 나에게 기대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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