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 끝에 내려앉은 구름은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바람에 한 번 쓸리고 나면 또 다른 구름이 바닥을 덮었다. 불볕더위도 폭염도 이름 모를 들풀에 서늘한 이슬로 맺힌다.‘운탄고도 1330’은 강원도 옛 폐광지역을 잇는 총길이 173.2㎞의 걷기길이다. 단종이 유배됐던 영월 청령포에서 시작해 정선, 태백을 거쳐 삼척 해변 ‘소망의 탑’까지 이어진다. 평균 고도 546m, 그중에서 정선 화절령에서 만항재까지‘운탄고도 5길’은 해발 1,067~1,330m 사이를 오르내리는 핵심 구간이다. 1330은 만항재의 높이다.
■사라진 탄광촌에 소박한 절 한 채
운탄고도 안내 책자는 5길 출발점을 화절령으로, 종착점을 만항재로 소개한다. 15.7㎞, 가파른 구간은 없지만 서서히 고도가 높아져 5시간 이상 소요된다. 주차하기 편한 만항재에서 출발하면 한결 수월해 4시간가량 걸린다. 만항재까지는 정선 고한읍, 영월 상동읍, 태백 시내에서 찻길이 연결돼 있다.
고한읍에서 오르면 국내 5대 적멸보궁이라 자랑하는 정암사를 거친다. 신라의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 유학할 당시 성물로 받은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해 지은 사찰이다. 전각 뒤편 바위에 세운 수마노탑이 불전을 대신한다.
‘남쪽의 신령한 바위’라는 의미로 지은 본래의 절 이름 석남원이 ‘깨끗한 바위가 있는 사찰’, 정암사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사찰은 도로와 바로 붙어 있어 쉽게 둘러볼 수 있지만, 수마노탑까지는 짧은 구간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정암사에서 만항재로 이어지는 도로는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군데군데 차를 세우고 쉴 곳이 있다. 맑고 청량한 물소리에 한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인다. 만항재 정상에는 ‘하늘숲길공원’이 조성돼 있다. 일본잎갈나무 군락 아래에 계절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안개가 수시로 내려앉아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운탄고도는 공원 맞은편 능선으로 연결된다. 고산에 난 걷기길이지만 폭이 넓고 평탄하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운탄고도는 석탄을 실은 차들이 오가던 구름 위의 길이다. 만항재에서 약 40㎞ 떨어진 신동읍 함백역(폐역)까지 이어진다.
초입이 더 순탄한 건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소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매캐한 탄가루 대신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개비에 걸린 운무가 산자락을 넘는다. 풍력발전 바람개비는 산줄기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데 운탄고도는 세 번째 바람개비 부근에서 왼쪽 내리막으로 방향을 튼다. 대부분 흙길이지만 경사진 구간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다. 길은 한결 좁아져 키 큰 나무들이 양쪽에서 가지를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길가에 핀 작은 야생화가 눈길을 잡는다. 보랏빛 꿀풀과 엉겅퀴며 주황색 동자꽃과 나리꽃이 어둑한 그늘에 초롱처럼 피어 있다.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 고목 사이로 흐르는 샘이 보인다. 사찰의 옹달샘처럼 꾸몄는데 ‘음용불가’ 안내판이 선명하다. 바로 옆 계곡에도 시원하게 물줄기가 쏟아지지만 함부로 마실 수 없다. 여느 폐광지역과 마찬가지로 운탄고도를 걸을 때는 마실 물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왼편으로 ‘혜선사’ 팻말이 보인다. 약 200m 내려가니 슬레이트와 기와를 인 집 두 채가 나타난다. 겉보기에는 민가에 가깝다. 사찰로서 모양새는 허술하지만 마당이며 처마가 금방 비질을 한 것처럼 깔끔하다. 절간을 기웃기웃 거리노라니 노스님 한 분이 방문을 열고 나온다. 22세 어린 나이에 여성의 몸으로 산골 민가를 구입해 이듬해부터 부처님을 모셨다는 성덕스님(85)이다.
사람이 그리웠던 듯 믹스커피 한 잔에 옛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제는 적막강산에 절간 하나 남았지만, 스님이 처음 발을 들일 때만 해도 700호 정도가 거주하는 규모가 제법 큰 탄광촌이었다. 강동마을은 집집마다 광부들을 대상으로 하숙을 쳤고, 언덕 너머 연해골에도 70호 정도가 살았으니 인구가 못 돼도 4,000명은 넘었을 거란다. 강동마을엔 서진탄광과 명신탄광, 연해골엔 동호광업소가 있었다고 했다. 빼곡하게 집들이 들어섰던 산자락엔 세월이 지나며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다. 산중에 위치한 봉황국민학교에 아이들이 넘쳐났다는 스님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살면서 호랑이도 서너 번 봤는데, 하도 많이 잡아서 그런지 요즘은 흔하던 멧돼지, 노루도 잘 안 보여.” 이 깊은 산중에 혼자 살면 무섭지 않으냐는 물음에 “짐승도 사람이 해코지 안 하면 절대 먼저 덤비지 않아”라며 세태 한탄을 덧붙인다.
“요즘 사람들은 짐승뿐 아니라 희귀한 꽃이 보이면 다 캐가서 야생화도 옛날보다 적어. 심어 놓은 두릅까지 캐가서 산중에도 남아나는 게 없어.” 그나마 이따금 불자들이 험한 길을 마다 않고 찾아주니 먹거리에는 아쉬움이 없다고 한다.
순한 산길에 탄광촌의 흔적이혜선사에서 옹달샘으로 되돌아와 이어지는 길은 살짝 오르막이다. 그제야 가파른 경사를 깎아 길을 만든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절개지에 제법 큰 바위와 날카로운 돌부리가 드러나 있다.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부드러운 흙으로 덮인 산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금만 땅을 파면 바위가 드러나는 악산이다.
다행히 오르막은 길지 않고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 왼편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 ‘운탄고도’ 로고가 세워져 있다. 맞은편 산줄기도 높고 험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엇비슷한 높이에서 바라보니 동네 앞산처럼 정겹다. 상징물 아래에 작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조금 더 가면 실제 탄광의 흔적도 남아 있다. ‘1177갱’이다. 민영탄광으로는 최대 생산량을 기록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다. 이후 화절령까지 인근에 10개의 소형 탄광이 새로 개발됐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해발 1,177m에서 시작한 갱도가 어디까지 파고 들어갔는지 알 수 없지만, 여행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불과 10m 정도다. 갱차가 다니던 선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벤치를 놓았다. 천장에 물기가 서려 있어 바깥보다 한결 서늘하다. 여행객이 간단하게 요기를 때우는 장소이기도 하다.
갱도 앞에는 도시락을 들고 환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광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폐광지역 광부 동상에는 어김없이 도시락이 쥐어져 있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막장에서 한 끼를 해결해야 하는 광부들의 고달픔을 상징한다.
인근의 도롱이연못도 마찬가지다. 광부 아내들이 연못의 도롱뇽이 살아있으면 남편도 무사할 거라는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한다. 해발 1,000m 산중에 둘레 150m의 연못이 존재만으로도 신비롭다. 1970~80년대 동원탄광에서 무연탄을 채취할 때 지반이 내려앉아 자연적으로 생성됐다고 한다.
도롱이연못에서 운탄고도 5길이 마무리되는 화절령까지는 약 1㎞, 산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화절령은 ‘꽃꺾이재’를 한자어로 고친 명칭이다. 진달래를 비롯한 야생화를 꺾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제 지천으로 피어나는 들꽃으로 수줍게 마음을 표현하는 낭만적인 장소라 해도 좋겠다. 어둑한 그늘 아래 피어난 야생화와 주변에 조성한 꽃밭이 화사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만항재에서 출발하면 운탄고도 5길은 힘든 구간이 거의 없다. 그러나 15㎞가 넘는 거리가 부담스럽다면 중간쯤에서 하이원컨트리클럽으로 하산해도 된다. 맛보기로 핵심 구간만 걸으려면 하이원리조트 마운틴콘도에서 케이블카로 백운산(1,426m) 정상 부근 하이원탑까지 올라가서 뒤편 ‘하이원하늘길’을 따라 1177갱과 도롱이연못을 거쳐 하이원리조트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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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글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