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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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2024-08-27 (화)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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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나이가 79년째다. 해방 바람을 타고 왔다는 광복은 현 정부의 역사수정주의자 육아(六訝)들의 일언 거사( 一言居士)가 점입 가경을 이루고 있다. 분명한 건 외세에 의한 독립이 이승만의 정읍 발언에 이어 남한만의 단독 선거로 분단 구조는 지금까지 상리 공존(相利共存)을 하고 있다.

악(惡)이 종교의 절대적 보약이 되듯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상리 공존은 각기 꼬리 흔들기 바쁜 강대국의 강아지가 된 듯하다.

북한은 제쳐 두고 남한에서의 통일 운동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제일 무서워 했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가 용수 바람이 되었다. 그러나 각 사회 단체 종교 단체들의 침묵과 폴리패서들의 방해로 일반 대중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통일 운동은 자연 스럽게 민주화 운동의 씨앗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가슴 벅차게 살아 숨쉬는 “분단에서 통일로"라는 피 끓는 슬로건은 5.18 대학살 이후 국민들 무관심이 통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되어 버린 듯하다. 더욱이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의 “화려한 휴가(광주 학살 작전명)"로 국민들의 국군에 의해서 학생들, 국민들이 처참하게 학살 되었다.

피로서 맞바꾼 민주화에 대통령은 국민들의 마음에 머물며 심(心)을 보고 맥을 짚어 국민들을 치료하고 보약을 처방하는 것이 직업인데 후꾸시마 가리비 안주에 폭탄주를 했는지 걸핏 하면 피새스럽고 애먼 하늘에 주먹질 어퍼컷을 날려 시골 3류 다방 조폭같은 연기를 잘한다.

나라와 국민을 가볍게 여기며 상식의 법칙에 순응하지 못하는 정치는 망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자나 깨나 나라와 국민들의 머리 꼭지에 똬리를 틀어야 하는데 일본이라는 잿밥에만 신경을 쓰는 듯 하다.

보라, 두 쪽으로 갈라진 광복절을 “일본 여행을 즐기는 징검다리 연휴" 라는 국제 조롱에도 대한민국은 은단 줏어 먹은 병아리가 되어 자울 자울 졸고만 있다. 독도 조형물은 조조 아가리 속의 계륵(鷄肋)이 되어 전쟁 기념관에서 철거되었고 급기야는 광복의 생일 아침에 ‘기미 가요’가 팔도 강산 곳곳에 울려 퍼졌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국민들의 환심을 산 대통령은 사람인 “바이든을 날리면서" 사람 바이든에게 충성하고 기시다 앞에서 기면서 조령 모개(朝令募改)의 정치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통일의 뜨거운 염원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는데 모 단체의 수장인 이영묵씨는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뜨거운 가슴의 통일이라는 말을 숙고 해야 한다" 하면서 “학생들의 통일 운동에 빨갱이가 끼어 든다"고 극우 지만원이란 자의 대변인이 되는 것처럼 칼럼을 썼다. 애국인지 친일인지 오기와 독기 품은 글들은 어딘가에 남게 마련이어서 해묵은 묵정 밭의 어웅한 잡풀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의 열망과 북한에 대해 그 무슨 앙갚음이 질기 굳게도 그리 많고 일본에 대해서는 그 무슨 관용의 애정이 넘치나?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지나친 미움은 병인 양 하여 누구에게나 염려스럽다. 지나침은 평통의 짓 거리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평화 통일을 위한 단체인지 전쟁을 하자는 단체인지 아눌한 나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탈북자들의 간증으로 애국 하기에 바쁜 것 같다. 탈북자들의 간증은 그 말이 그 말이어서 같은 상수리에서 열린 도토리 크기들이다.
하나 같이 북한은 가난하다. 가난해서 허릿바를 졸라매며 보리 곱살미를 먹는것이 싫어 부모를 버리고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탈북을 해야 됐나? 디올 백과 구찌 백이 아니면 무슨 무슨 축에 끼이지 못하는 남한의 소비성 향락이 꿈에도 소원이였는가?

배고픔의 서러움은 배부름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흥청 망청 소비 문화는 임계점의 마지막 길인지도 모른다. 로마가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다.

이영묵씨는 한술 더 떠서 민족이란 말을 일본에서 빌려 써서 민족 타령을 그만 하자고 민족을 타이르듯 했다. 그럼 이 선생의 조상님들이 차례로 모셔져 있는 족보도 일본에서 얻어 쓴 것일까? 이영묵씨의 한민족 무지와 무시는 끔찍하여 비개할만한 애소리(아직 나를 수 없는 작은 새)로 논(論)할 가치도 없다.

못난 돌멩이도 조개 속에서 진주가 된다는데 사람은 상아탑 속에서 상아가 안되는 모양이다. 스스로 지식을 파괴 하면서 종작 없이 잘난 체들 그만들 하시라. 나는 일분 후에 급살을 당해도 좋은 건 좋고 나쁜 건 나쁠 뿐이다. 어느 사람의 말을 흉내로 망언다사(妄言多謝) 입을 다문다. 나는 모든 불의에 뻗댄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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