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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왕과 성덕임의 순애보

2024-08-26 (월) 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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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21대 영조 왕이 아들인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뒤주에 가둬서 죽인 후 당시 11살의 정조의 가족들은 궁에서 쫓겨나 좌의정 홍봉환이 사는 외갓집에서 기거한다. 이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본 집사의 딸인 성덕임이 정조와 처음 만나게 된다. 정조의 나이가 11세, 덕임의 나이가 10세였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궁으로 돌아온 정조는 궁녀인 덕임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정조의 모후인 혜경궁 홍씨가 아름다운 모습에 성품이 단아하고 인자하며 총명한 덕임을 보방 나인으로 두고 궁중 법도를 가르친다. 덕임이 14세가 되었을 무렵 15세가 된 정조가 모후의 궁에 들러서 덕임을 궁중 밖의 호젓한 곳으로 불러낸다. 정조의 첫사랑인 덕임에게 정조는 내 후궁이 되어 달라고 사랑의 고백을 한다. 궁녀로서는 최고의 영광이자 꿈속의 선망의 대상인 정조로부터 고백을 받은 것이다.

덕임은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흐느낀다. 덕임이 정조에게 “그 명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세손의 고백을 거절한다. 세손 빈과 정조 사이에는 후손이 없는 와중에 자신이 정조의 후궁이 된다면, 사도세자를 시해하는데 공모한 권력자들이 조정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조의 입지를 위험에 처하게 할 경우를 감안해서 덕임은 눈물을 머금고 정조의 고백을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정조의 사랑이 야사와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정조와 성덕임의 순애보는 참조로 <어제 의번 묘표 지명>에 정사로 실려 있다. 곧 왕이 될 정조의 고백을 거절하다니. 정조는 세존의 위엄을 기만한 덕임의 죄를 물어 화를 내고 사약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지덕을 겸비한 정조는,“나는 덕임의 총명함에 감동하여 더는 다그치지 못하였다.”라고 하며 사려깊은 덕임의 처사에 탄복하며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고백의 시간이 지나고, 정조는 전쟁같은 하루를 보낸다. 부친인 사도세자를 죽인 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있어서 매일 암살과 독살의 공포 속에 살얼음 판을 걷고 있었다. 이런 위협에 맞서서 자신의 왕권을 강화해 줄 은인인 홍국영을 만난다. 홍국영은 정조의 왕권을 강화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하게 된다. 1776년 정조는 25세의 나이로 영조로부터 왕위를 계승 받고 정조 시대를 열었다. 불행하게도 정조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왕족과 중신들은 정조에게 후궁을 들이도록 요청했다. 정조는 후궁에 관심이 없었다. 정조의 마음 속엔 오로지 성덕임 뿐이었다.

사실 정조는 성덕임을 처음 만난 지난 20년 동안 덕임을 궁녀의 반열에 올려 두었다. 정조는 덕임을 만난지 15년 후에 다시 궁녀 덕임을 찾아간다. 정조는 30세, 덕임의 나이는 29세였다. 정조는 덕임에게,“궁녀가 아니라 나의 여인으로 두겠다.”고 2차 사랑의 고백을 한다. 천한 가문의 자신보다는 명문가의 여인이 정조의 후궁이 되는 것이 정조를 위한 순리라고 생각한 덕임은 정조의 고백을 또다시 거절한다. 권력을 잡기위해 소론 측이 화빈 윤씨를 후궁으로 추천하고 정조는 정략적으로 후궁을 받아들였다. 후궁이 된 윤씨는 후사를 낳지 못했다. 그런데 모든 왕족들과 중신들을 놀라게 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정조의 연인인 성덕임이 오매불망 고대했던 왕자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정조는 크게 기뻐했고 성덕임을 정2품 의빈으로 책봉했다.

정조와 덕임이 알콩달콩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기던 중에 덕임이 2번 째 왕자를 임신한다. 그렇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왕자를 임신한 5개월 즈음 원자가 5세의 나이로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둘째 왕자가 태어나기 전 4개월이 될 즈음에 정조의 첫사랑이자 영원한 연인인 성덕임이 가슴에 심한 통증을 가져다 준 자현증으로 쓰러진다. 성덕임은 임신한 둘째 왕자를 구하지도 못하고 함께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사랑했던 성덕임을 위해 후궁의 신분을 빌미로 원자인 문효세자의 무덤옆에 성덕임의 무덤을 존치하지 못한다는 중신의 반대를 물리치고 원자 옆에 무덤을 존치했다.
정조는 덕임이 세상을 떠난 후 10년 동안 매년 덕임의 제삿날 마다 빠짐없이 덕임의 무덤을 찾아 간절한 제문을 지어 올렸다. 제문에는, “덕임과 영원히 이별하니 내가 어렵고 힘들구나. 나는 이제와서 내가 영원히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를 의심한다. 자네도 내가 슬픔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슬퍼 한 것이다. 그러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라며 애통해 했다.

정조가 남긴 글 마디마디에 새겨진 덕임을 향한 정조의 진실한 사랑. 정조는 덕임을 그리워 하다가 덕임이 죽은지 1년 후에 덕임을 따라서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한 문호 셰익스피어 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러브 스토리는 작가가 창작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정조와 덕임이 보여준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역사상 동서고금을 통해 어느 누구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비와 참사랑으로 점철된,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순애보였다.

<대니얼 김 사랑의 등불 대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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