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카를 지켜야 하는 여인… 스크린에 스민 원주민의 서러운 삶

2024-07-26 (금)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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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TV플러스 영화 ‘팬시 댄스’

조카를 지켜야 하는 여인… 스크린에 스민 원주민의 서러운 삶

로키(왼쪽)와 잭스는 자매 같은 조카와 이모다. 둘은 함께 살고 싶으나 법은 둘의 동고동락을 허락하지 않는다. [애플TV+ 제공]

한 여성이 언니의 딸을 지키려 한다. 언니의 생사는 알 수 없다. 조카에게는 비밀이다. 언니의 행방을 쫓으면서 조카를 돌봐야 하는 여인의 삶, 조금은 익숙하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미국 원주민들이라면. 주류가 아니기에 감내해야 하는 불이익이 있다면. 영화 ‘팬시 댄스’는 한 가정의 불행을 지렛대 삼아 미국 원주민의 서러운 삶을 들춘다.

잭스(릴리 글래드스톤)는 13세 조카 로키(이사벨 드로이-올슨)를 돌보고 있다. 함께 살던 언니는 몇 주 전부터 행방불명이다. 잭스는 수입원이 마땅치 않다. 미국 원주민 보호지역에서 절도로 생계를 유지한다. 로키를 보호하면서도 언니를 찾아야 한다. 죽었다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알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금전적으로 쪼들리고, 정신적으로 편치 않은 나날이나 잭스와 로키가 기다리는 날이 있다. 미국 원주민들이 모여 전통춤을 추는 행사 ‘파우와우’를 고대하고 있다. 로키는 어머니와 함께 ‘모녀 부문’에 출전해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로키는 어머니가 파우와우 행사 날 나타날 거라고 기대한다. 잭스와 로키가 행사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잭스의 아버지 프랭크(쉐어 위햄)가 찾아온다.


프랭크는 백인이다. 잭스 어머니와 헤어진 후 재혼해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잭스는 전과가 있다. 로키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다. 대신 프랭크가 보호자 자격이 있다. 프랭크 부부는 아이가 없어서일까. 로키를 돌보기 위해 적극 나선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강한 잭스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영화는 21세기에도 지속되는 미국 원주민 침탈의 역사를 고발한다. 프랭크는 엄밀히 말하면 로키와 혈육은 아니다. 프랭크는 로키 어머니의 양부다. 잭스 입장에서는 백인 아버지가 조카를 부당하게 강탈한 걸로 보인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와 땅을 빼앗은 것처럼 말이다. 프랭크의 아내가 로키에게 발레를 권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잭스와 로키는 파우와우에 참가하기 위해 프랭크로부터 탈주한다. 치명적인 위법이다. 이모와 조카는 여행 길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지나 파국을 피할 수는 없다. 로키의 어머니를 찾아달라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공권력은 잭스의 위법에는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미국 원주민이 겪어야 하는 부조리를 압축하는 대목이다.

잭스와 로키는 파우와우에서 전통 춤을 추고 싶다. 원주민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고 싶다. 애잔한 북소리에 맞춰 죽은 자들을 위해 몸을 흔드는 두 사람의 모습에는 ‘미국인’들이 쉬 공감할 수 없는 간절함이 스며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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