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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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비빔국수

2024-06-17 (월)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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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비빔국수가 여기 있소!
듣고 보니 어느 노래가사인 것 같은 착각이다. 친근감과 해학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나이에 버려야할 식습관 중 “적게 먹기”에 반대되는 식탐인 것은 분명한데 침샘을 발동케 하는 음식 이야기를 하려 하니 소재가 무궁무진한 것을 어찌하랴.

집사람이 싱싱한 열무를 여러 단 사와 부탁하기도 전, 충성(?)스럽게도 다듬고 씻는 것까지 해 주겠다고 자원을 하니, 아, 그러지 말고 다듬는 과정까지만 해 달라며 선을 딱 긋는 게 아닌가. 왜인고 하니 음식업체에는 좀 미안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때론 기성 열무김치 먹을 땐 간혹, 아니 자주 모래가 씹히기 때문이란다. 이해가 간다. 대량 열무김치 제조과정에서 아무리 철저히 씻는 다 한들 개인 가정집에서 처럼 되겠는가. 하여 필자는 씻는 역할에서 제외, 좀 편해지긴 했지만 좀 기분이 그러하다. 허허.

갓 담근 열무김치는 더운 날 냉면에 말아먹어도, 막국수에 비며 먹어도, 김치국물 듬뿍 부어 훌훌 들이 마시며 먹어도 일품이렸다.
체사픽 만의 특산품 Blue Crab의 명성은 웬만한 식도락가들은 다들 알 것인데 어느 날 어느 모임에서 한국 서해안 산 간장게장 먹은 이야기를 어느 분이 침을 튀겨 가면서 하면 필자도 저절로 군침을 흘리며 한참 듣곤 집에 왔다.


어느 날 동네 식료품가게서 blue crab을 발견하니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집 식구들 모두가, 특히 입맛이 짧은 집사람마저 Blue Crab엔 끔뻑한다. 하기에 상당한 량을 사서 쪄서 먹고 일부는 간장게장을 직접 담그기로 했다. 보통 경우는 집사람이 양념게장을 만들어 먹었지만, 이번엔 필자가 유튜브에서 본대로 간장게장 만들기로 하여 3,4일 후에 먹는 데 양념게장만은 못한 것 같다하니 집사람이 그러면 그렇지 하며 어깨를 들썩거린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든 간장게장을 먹어보다니, 허-허-, 이것도 은퇴 후 여유로움의 한 단면인가, 은혜의 삶인가 하련다.

동부에서 비슷한 시기에 이곳 서부 같은 동네에 이사 온 선배 교우되는 분 왈, 자주 가던 근처 식당이 문을 얼마 전 닫았는데 며칠 전 신장개업 광고를 보고 갔더니 음식이 그저 그렇더라고 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식당주인의 미래를 걱정해준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네다섯 살 때니 거의 반세기전 일, Florida Orlando의 Disney world에서 구경 후 지치고 허기가 져 어렵사리 한국음식점을 찾아 얼마나 반가웠는지!
허지만 음식 먹고 나올 때 이 꼬마 우리 애들이 한 말을 요즈음도 추억거리로 웃으면서 하곤 한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얼마나 더 맛난지 모르겠다고. 식당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가 어쩐 사정으로 가게 문을 열은 것이겠구나, 측은한 생각이 들던 젊잖아 보이던 분들, 지금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들 지낼까?

우리 아이들은 인도나, 에티오피아, 중동 음식들을 좋아한다. 나의 생일날이라고 워싱턴 DC에 Adams Morgan 동네 Meskerem 에티오피아 음식점에 초대를 해서 가보니 옛날 우리나라처럼 그 많은 미국인(?)들, 아마도 외교관들, 군 출신들이 아닌가 하는 손님들로 만원이다. 멍석 같은 자리에 의자들도 없이 좌정, 카레 색의 누런 접시 음식을 맨손으로 집어 먹는 모습에 생일이고 뭐고 입맛이 가셔 거의 먹지를 못하고 집에 돌아와 라면과 김치를 먹고 원기회복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우리아이들은 잘도 먹었으나 집사람은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필자와 똑같이 자식들의 효도(?)를 잘 견디고 라면으로 뒤풀이, 다 이런 것들도 세월이 지나니 재미있는 추억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열무김치가 나는 좋아, 좋아! 유행가 가사는 우리들의 애환이 섞인 노래다. 열무김치 어디 있소!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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