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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정신을 다음 세대의 유산으로

2024-03-17 (일) 변성림 12대 이사장(20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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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싱턴한인복지센터 50년 스토리 ②

나는 12살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오게 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고, 한인 이민자도 그리 많지 않던 시절, 우리 가족의 초기 이민생활에 큰 힘이 되었던 곳은 교회 공동체였다. 나는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도 만나고,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우며 미국에서의 삶에 적응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참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우리의 삶에 있어서 공동체/커뮤니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던 것 같다.

공동체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은 자연스레 나의 계속되는 이민 생활에 큰 바탕이 되었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때, 아이의 친한 친구의 엄마를 통해서 워싱턴한인복지센터 이사로 섬겨줄 수 있는지 요청을 받았을 때도 ‘내가 공동체를 통해서 받았던 유익과 혜택을 우리 지역사회의 어려우신 분들께 돌려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사직을 수락하였다. 이 분이 내 직전에 복지센터 이사장을 지낸 김상희 이사였다.

그런데 전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라는 것, 그리고 공동체에 닥친 엄청난 사건, 상황하에서 이것을 풀어가는 것도 역시 공동체 안에서의 협력과 공조가 열쇠라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 내가 복지센터 이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발생하였다. 바로 2019년 말부터 시작되어 전세계를 엄청난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비드 19 팬데믹이었다.

생사를 오고가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에게 쓰나미같이 몰려올 때, 이사장으로서 기관에 속한 직원들, 봉사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면서 어떻게 지역사회분들에게 지속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가 제일 큰 당면 과제였다. 2020년 3월, 복지센터의 역사에 단 한번도 시행한 적이 없는 전직원 재택근무를 단행하면서, 관련된 기관 정책을 수정하고, 집에서 비대면으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셋업하고, 동시에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부의 정책과 코비드 예방 수칙을 적절히 우리 기관에 적용하고, 또한 지역사회에 즉각적으로 공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셋업하기 위해서 이사들, 시니어 직원들이 밤마다 추가 업무를 하면서 고민을 해야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코비드로 인해 지역사회 주민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큰 가지 일을 시작하였다. 먼저 한미의사협회와 협력하여 코비드 의료 핫라인을 셋업하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증세가 코비드에 해당되는지, 코비드 증세가 있을 때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한미의사협회의 의사들이 교대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지역사회 주민들의 건강 관련 질문들에 대한 즉각적인 답변을 제공하였다.

이 코비드 의료 핫라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지역 신문, 방송을 타면서 워싱턴 수도권 지역이 아닌 곳인 뉴욕, 텍사스, LA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한국일보사와 워싱턴교회협의회와 협력하여 기존에 진행하고 있던 사랑나눔 캠페인을 ‘코비드 사랑나눔 캠페인’으로 개편하여 지역사회에 대대적인 펀드레이징을 진행하였다. 코비드로 인해 대부분의 중소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당장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하는 상황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면서, 그들에게 식비, 렌트비를 보조해 주어야하는 긴급한 필요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 코비드 사랑나눔 캠페인이 진행되던 1년 반 남짓한 기간동안 지역사회에서 약 40만불의 기금이 모금되었고, 이를 통해 700여 가정들이 식비와 렌트비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일보사의 많은 기금 모금 캠페인 중, 단시간에 가장 많은 기금이 마련된 캠페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때 우리 기관을 믿고 크고 작은 기부를 아끼지 않았던 지역사회 단체, 교회, 개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금 생각해봐도, 블락버스터급 재난 영화 한편을 본 것같은 그 어려웠던 순간들을 어떻게 헤쳐나왔는지 정말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공동체로서 함께 협력하고 서로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이제 복지센터의 향후 50년을 바라보고 준비해야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공동체 정신이 우리 이민 1세대를 넘어서서, 2, 3세대에게까지 한인 이민사회의 귀한 전통과 유산으로 전수되기를 바라며, 그 일을 위해서 워싱턴한인복지센터가 더 많은 젊은 세대들을 아우르며, 그들이 주인이 되어 일하고 섬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기관으로 발전되어가기를 소망해본다.

<변성림 12대 이사장(20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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