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창출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가장 먼저 깊이있게 연구한 사람은 아담 스미스다. 그는 ‘국부론’에서 핀 공장의 예를 들며 10명의 노동자가 18개 공정으로 나눠 핀을 만들면 하루 4만8천개를 생산할 수 있는 반면 이를 혼자서 하면 하나 만들기도 힘들다면서 부의 원천을 분업에서 찾았다.
그러나 분업보다 중요한 것은 핀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식을 알아내는 일이다. 분업은 이 방식을 실천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 부의 원천 하면 제일 먼저 석유나 철 같은 천연 자원을 떠올리지만 이것을 활용하는 기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펜실베니아 타이터스빌은 원유가 자연적으로 샘솟아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었지만 이를 정제하는 기술이 개발된 후 한 때 인구당 백만장자가 제일 많은 곳이 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그 정보를 후대에 전수하는 연구소와 교육 기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이 오늘처럼 부강한 나라가 된 데에는 1620년 영국 이민자들이 플리머스에 정착한 지 불과 16년 뒤인 1636년 하버드 대학을 세우는 등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번 돈을 교육에 투자하는데 앞장섰다. ‘강철왕’이란 별명을 가진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카네기 멜론 대학과 카네기 재단을 설립하는 등 교육 자선 활동에 전 재산의 95%를 썼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부자로 손꼽히는 존 라커펠러도 마찬가지다. 전 재산이 미국 GDP의 2%(지금으로 따지면 5,000억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되는 그는 그 중 60%를 시카고 대학과 카네기 재단 설립 등에 사용했다. 어린 나이부터 자선을 시작하는 것도 미국 부자의 특징이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16살 때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의 6%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마이크 블룸버그를 빼놓을 수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교를 다닌 그는 1964년 졸업하고 첫 월급을 받자 5달러를 모교에 기부했다. 그의 모교에 대한 기부는 그 후 계속 이어져 2018년 18억 달러를 비롯 총 35억 달러를 줬다. 미 역사상 교육 기관에 대한 기부로 최대며 이로 인해 학생들은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지난 주에는 룻 고티스먼(93)이 자신이 근무한 적이 있는 뉴욕 브롱크스의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에 1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워렌 버핏의 친구이자 공동 투자가였던 남편 데이빗이 남긴 유산을 이 학교에 주기로 한 것이다. 뉴욕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의 하나로 저소득층 학생이 많은 이 학교 학생들은 영구히 무료로 다닐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의대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20만 달러가 넘는 학자금 부채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룻은 1968년부터 이 학교에서 장애아 재활 프로그램 연구 교수로 근무했는데 남편은 이 즈음 버핏을 만나 친분을 쌓으며 함께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핏의 버크셔 A급 주식은 당시 150달러에서 지금 60만 달러로 4천배 정도 오른 상태다. 이 소식을 들은 버핏은 “10억 달러를 이보다 잘 쓴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룻의 부모는 룻이 태어나기 전부터 메릴랜드 고등학생을 위한 장학사업을 해왔다고 한다. 룻과 데이빗은 억만장자가 된 후에도 이름을 알리지 않고 기부 사업을 해왔으며 이번에도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이름은 없다며 자기 이름을 학교에 넣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거액 기부를 한 룻과 블룸버그 모두 유대인으로 자선 사업가 중 유대인 비율은 인구 비율을 압도하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유대인은 ‘푸시카’라는 자선 상자를 비치해 두고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받은 용돈의 일부를 넣으라고 가르친다.
유대인들에게 자선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해야 하는 의무다. 유대 경전의 핵심인 모세 5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는 “이방인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라. 너도 이집트에서 이방인었다”(출애굽기 22장 21절)라는 것이다.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박해받으면서도 살아남은 가장 중요한 비결일 것이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은 둘뿐이다. 하나는 공권력에 의한 강제고 다른 하나는 깬 자의 자선이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한 방식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교육열이 높고 돈 버는데 열심인 한인들은 ‘동양의 유대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베품의 문제에 관한한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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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