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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섈 위 댄스(Shall we dance)

2024-02-19 (월)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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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산다는 것은 노동이고, 고통의 연속이다. 하지만 조물주가 사람들에게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통의 형벌을 주었지만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치료제도 주셨다. 그것이 춤과 노래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춤과 노래가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지옥아닌 지옥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느 민족이든지 노래와 춤, 춤과 노래를 싫어하는 민족은 없다. 제각기 자기들의 노래가 있고, 춤이 있다. 힘들 때마다 노래를 부르고, 무서울 때 노래부르고, 좋아서 춤을 추고, 슬퍼서 또한 춤을 춘다. 그동안 한국의 노래와 춤이 서방의 팝과 디스코에 묻혀 한국의 아름다운 음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는데 이제 한국의 춤과 노래가 전세계에 알려져 이제는 미국과 유럽의 팝이 아니라 k-pop이라는 새로운 단어뿐만 아니라 예능의 한 장르가 이루어졌고, 그 힘과 기세는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춤은 혼자서도 춤을 추고, 둘이서도 춤을 추고, 여럿이서 춤을 추기도 한다. 고등학교 시절 소풍갔을 때 끼가 있던 친구들이 카셋트 테이프를 틀 수 있는 큰 라디오를 가지고 와서 점심식사 후 오락시간에 팝송을 틀면서 함께 서툰 스텝을 하나 둘 하나 둘 오른발 왼발 스텝을 밟고 오른손 왼손 하늘을 찌르고 옆으로 찌르며 고고춤을 추면서 신나게 놀았던 때가 기억난다. 너도 나도 잘 못하지만 “섈위댄스”의 분위기로 함께 어우러져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대학교에 갔더니 몸과 다리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고급스런 디스코 춤을 엉거주춤하면서도 축제 파트너와 함께 “섈위댄스”하며 축제의 밤을 보내던 5월의 그 때가 아른아른 생각이 난다. 춤은 신나는 것이고 노래는 흥겨운 것이다.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서먹해졌던 사람들과 친해지고, 멀어졌던 사람들도 가까워지고, 슬프고 힘든 순간도 힘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춤과 노래는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삶에 춤이 없고 노래가 없어졌다. 아니 춤과 노래는 있기는 하는데 삶은 흥겹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고, 기대마저 저버릴 때가 있다. 춤은 추는데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춤을 추고, 노래는 부르는데 서로 장르도 다르고 박자도 음정도 맞지 않는 불협화음의 소음만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삶에는 경쾌하게 움직이는 피아노 건반과 팝콘 터지듯이 두들기는 드럼의 터지는 소리보다는 총과 대포소리가 소리가 들린다. 반가움과 사랑으로 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어야 하는데 밀어 제쳐 넘어뜨리려고 얼굴을 빨래 짜듯이 찡그리며 입을 벌려 헐떡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따뜻한 봄날 아지랑이를 치맛자락에 담아 사랑하는 그에게 살며시 안길 때 치마에 담긴 아지랑이를 풀어 따뜻하게 하려는 마음보다는 놀부가 흥부를 보기 싫어 대문에서 냉정하게 쫒아내듯 문전 박대하며 서로 하늘과 땅이 멀듯이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악기의 연주소리는 들리는데 노래가 없고, 박수는 치는 것 같은데 손바닥이 빗나가는 소리같고, 춤을 추는 것 같은데 손과 발과 몸이 따로 놀린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12:5)

이제는 우리가 함께 한마당 춤을 출 때이다. 서로 손잡고 떼창을 할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길은 험할 일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섈 위 댄스? 함께 행복한 춤을 추시겠습니까?"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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