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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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몸과 마음

2024-02-15 (목)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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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과 머리털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예전에는 죄명을 먹물로 문신(文身)하는 형벌을 묵형이라 하고, 때로는 단체조직의 증표나 주술적인 의미로 행하였으나, 요즘은 예술적이거나 흉터를 가리기 위한 타투를 아무렇지않게 하기도 한다.

누구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간다. 마음의 상처는 서로가 마음을 풀고나면 아물기도 하지만 몸에 난 상처는 흉터가 되어 언제까지나 자신을 아프게한다. 개인적인 부끄러운 나의 상처를 얘기하는것은 자신의 몸에 일부러 칼자국을 내는건 말리고 싶다. 멋지게 문신을 해주거나 깜쪽같이 예뻐지는 성형수술을 하는 병원이 장사가 안되어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군가 문신한게 멋져 보여서 하고싶다면? 아니야 그러지마라 제발 그러지 말아다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몸에 칼자국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폭이 아닌데도 내 몸에는 커다란 수술자국이 세군데나 있다. 아주 어릴 때 어디선가 떨어져 허리 수술을 하고 석고로 기브스를 하고 몇달을 병원에 누워있었다. 그럼에도 소금간이 안된 시금치 나물이 꼭 나오는 병원밥은 맛있었고, 누군가 병문안 오면서 가져오는 귀한 바나나와 복숭아 통조림을 기다리며 버텼다.

그나마도 자손이 귀한 집에 10년 만에 태어나 내 뒤로 남동생이 나오게 해주었다고 내 키 만큼의 돈을 퍼부어서 허리에 칼자국을 남기며 살아났지만 그 후유증으로 쭉쭉빵빵한 우리 식구중에선 내가 제일 작다.

왠일인지 어릴때부터 나는 자주 아팠다. 동네의원에서 주사 맞을때마다 울며 불며 온갖 쌍욕을 하다가 중학생이 되어 의사 할아버지를 만난 날 쥐구멍이라도 쑤시고 들어가고 싶었고 멀리 이사가고 싶었다.

그래도 계속 아프니까 우리집 우물가 마당에서 무당이 덩덩 장구소리에 맞춰 굿판을 벌려 춤을 추면 나는 삼태기 소쿠리 밑에 있고 그위로 무언가를 뿌리면서 춤을 추었고, 할머니와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두손 모아 싹싹 빌면서 고사를 지내고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던 팥떡과 무지개빛 불량사탕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도 몇달에 한번씩은 고운 한복을 입은 청상과부 엄마를 따라 부처님께 끝없이 절하는 엄마 곁에서 남동생과 나는 대웅전 방석 위에서 잠든 뒤에 깨어나서 먹는 절밥은 예전에도 지금도 참 맛이 있다.

그 뒤로도 온갖 사슴 피, 자라 즙, 알 수 없는 온갖 약을 먹어선지 나는 말랐지만 뼈도 굵고 등판도 넓어져서 집안의 가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세지고 건강해져서 작고 까무잡잡한 골목대장인 나와는 달리 뽀얗고 귀튀나게 순둥순둥한 남동생을 지켜줄 수 있었다.


그러나 커갈수록 나는 수술자국으로 마음이 상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어른이 되면 수녀는 못 되어도 혼자 살려는 마음으로 명동성당엘 찾아가 잘 생기고 멋진 신부님께 반해서 영세까지 받았다.

교사가 된 뒤에는 방학이면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작가가 되어 혼자서 살아가고 싶었다. 아니면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제일 비싼 병원이 있다는 미국엘 가서 최첨단 성형수술로 흉터없는 여인으로 탈바꿈하고싶었다.

그러나 문득 살아온 사랑앞에는 속수무책으로 결혼을 했고, 당연히 엄마처럼 늦게라도 아들 딸 낳고 지지고 볶고 살 줄 알았지만 내 복은 아니었다. 방학때면 시험관 시술을 하느라 혜화동 대학로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개복수술로 다시 한번 커다란 칼자국을 내었고,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나를 보며 눈물 짓는 그를 보고 마음을 접고 정신을 차리고, 무자식상팔자클럽 회원이 되어 아직도 예쁘다는 남편에게 감사하며 할머니로 늙어간다.

역시 신은 무엇이든 하나는 비워두어 겸손함과 사랑으로 채우며 살라고한다. 그래도 나의 간절한 소원은 만약에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런 칼자국 없이 곱게 자라 잘룩한 허리를 뽑내며 단추가 터질듯 꽉 끼는 블라우스와 똥꼬 치마를 입고서 그대를 다시 만나면 나에게 한 눈에 반하게하고 주시는대로 힘 닿는데까지 낳아서 키워볼 것이라고 모든 성인과 하늘과 땅에 빌어본다.

이제는 별일없이 늙으려 했더니 그나마 볼 만했던 예쁜 다리가 아파서 양쪽 무릎에 쌍칼자국이 또 생겼다.

난 원래 무엇이든 옷, 그릇, 장신구도 색깔과 세트로 맞추는걸 좋아한다. 이제는 앞 뒤로 배와 등, 양쪽 무릎으로 셋트로 균형을 맞췄다고 웃지만 웃는 게 아니다. 그나마 마음이라도 에뻐야하는데 할머니가 되니 올라갔던 눈웃음과 입꼬리는 아래로 쳐져 심술이 나고, 고집만 내세워 듣고 싶은것만 듣고, 하고 싶은말만 하게되니 참으로 민망하다.

다른 것은 대개 돈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 대신 신은 돈대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죽음을 나누어 주었으니, 부디 그날까지 모든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아끼고 상처내지 말고 살기를 바란다.

<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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