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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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2024-01-23 (화)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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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언에 따라 절판된 것으로도 유명한 <무소유> 저서의 법정스님 등 특히 정신세계의 지도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 언어도 세속에선 때로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됨을 안다.

우리들이 그처럼 갖기를 갈망하는 것들을 초개같이 여기며 단지 연명하기에 절대 필요한 생활용품 몇 개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경우를 무소유라 한다면(불가에선 원래 ‘상相’이란 존재하지도, 그렇기에 인정할 필요조차 없기에, 무소유라는 말 자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한다), 소유라기보다는 인연을 계속하기 싫은 소위 골칫거리 무언가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내기를 어쩔 수 없을 때 인연 포기선언을 하는 경우가 영어권의 단어로 ‘Disown’이라는 동양인들에겐 생소한 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신질환을 가진 식구가 있을 때 갖은 노력의 효과도 없을 절망적 상태에서 본인도 부모도 막다른 골목에서 서로가 인연을 포기하는 경우 부모 쪽에서 쓰는 단어가 소위, ‘Disown: 소유, 인연 포기’ 한다는 말이다. 자식 쪽에선 소위, ‘버림, 내버려짐’을 받은 느낌일 것이다.


홈리스 일부가 한 예가 아닐까 한다. 아마도 자식을 유기하거나 고아원 등에 맡겨지는 어린아이들도 똑 같은 심정, “버려졌다”는 느낌이 일생을 괴롭힌다고 한다. 그들에게 ‘disown’라는 말은 청천벽력 같은 말일 것이다.

좀 오래된 워싱턴 DC의 한국인 처녀 두 자매 노숙자 이야기도 있었지만은 한국전쟁 통에 부모와 생이별 후 어찌어찌 연유로 미국엔 왔지만 부모와의 생이별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 때문에, 늘 허공에 대고 하는 이야기, “부모님이 우리를 찾으러 곧 오실 것”이라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기사였음을 기억한다. 생각 이상의 너무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겠다.

이뿐일까? 옛날의 ‘고려장’도, 현대의 너싱홈(Nursing Home) 제도도 말이 좋아서이지 이유여하를 떠나 자식이 부모와의 인연을 끊는 ‘Disown’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개인적으론 연전에 작고하신 큰 형님도 평소에 그토록 두려워(?)하고 싫어하시던 너싱홈에 가신 후 1주일 만에 타계하셨다. 최근엔 친구 중 한 명은 얼마간 너싱홈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 자신의 침대에서 운명하고 싶다 해서 그리 했다는 얘기를 미망인을 통해 들었다.

이야기가 번거로워 다른 이야기들 같지만 원리는 인연의 포기 ‘Disown’를 남녀노소 없이 두려워하는 약한 인간의 심층 심리가 아니고 무엇일까?
애완동물, 반려동물들이 있어 한껏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행운아들이 있나 하면 유기된 동물보호소 같은 곳에선 혹시 재수가 있어 선발되어 어느 주인에게 입양되기도 한다지만 때론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되돌려 보내어지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이때 되돌아온 동물들의 축 처진 의기소침한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한다. 하니 인간에게서 더 말해 무엇 할까!

이렇게 소유를 하지 않으려는 상태도 극명하게 다름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보다 나은 처지의 우리 모두는 감사하며 불행한 약자들을 도와주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하나 우리 부부로선 듣기만 했지 얼마 전 처음 본 ‘A Beautiful Mind’ 영화(Princeton 대학 출신 천재 수학자의 고난의 역정을 곁에서 끝까지 보살펴준 부인의 헌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1994년 공동 수상한 이야기)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음은 왜 그럴 까? 끝까지 ‘Disown’을 거부한 현명한 부인이 아닐까?

<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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