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간 스포츠센터에는 운동친구들이 많다. 날씬하고 쭉쭉빵빵 몸짱일수록 거울이 잘 보이는 중앙통로에서 뽐내며 맛도 없는 단백질 음료를 마신다. 부지런히 운동하고 일하러가는 친구들이 떠나면 늦은 아침부터는 약간은 비실하고 근육이 쳐진 할머니 할아버지와 퉁퉁한 아줌마 아저씨들 세상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지나치게 잘 먹었는지 모두들 배가 볼록 나왔다. 풍만한 가슴인데 온 몸에 털이 부글부글한 할아버지와 아침인사를 나누고, 화려한 타이즈와 뒷모습은 쫙 빠진 몸매지만 주름이 자글한 멋쟁이 할머니를 지나친다. 코로라가 지난 뒤에 안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어디로 이사 갔으리라하며 애써 침착하게 천천히 움직인다.
아침마다 동네 한바퀴를 산책하며 만나는 친구도 있다. 나와 비슷한 통통이들은 서로 니 맘 안다는듯 스쳐 지나가고, 무엇을 던져놔도 잘 자란다며 별 볼일없는 우리 텃밭을 웃으며 기죽이는 아줌마는 은퇴하고 아예 마당에서 살고있으니 그집 마당에 토끼와 사슴이라도 몰래 불러서 풀어놔야겠다.
90이 넘도록 운전하던 할아버지와 오랫만에 그집 계단에 앉아서 초콜릿을 나누며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각자 아무런 문제없이 수다를 떤다. 어차피 우리의 대화는 아이고! 그래도 너는 젊고 예쁘고 큰병은 없어 보이니 다행이다. 아무쪼록 잘 챙겨먹고 니네 손자 손녀도 잘 커가는구나! 남편이나 마누라 따라갈 때까지 잘 지내자며 응 그렇지 그래하며 각자 웃으며 이야기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그 중에서 잘 맞는 미술반 동아리 친구들도 참 좋다. 먹물과 화선지에 그리는 동양화는 차분하게 집중을 하며 선비가 되어서 좋고, 아트반은 연필스케치화, 수채화, 아크릴화를 배우다가 드디어 엽서 2장 크기의 빳빳한 캔버스천에 그림을 완성해 벽에다 세워놓았다. 난 액자가 없는게 맘에 든다며 흐뭇해한다.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그릴 것인가 생각에 잠긴 화가가 된다.
아직도 음정과 박자를 모르는 나는 좋아하는 음악도 편식하듯이 폭이 좁다. 제목도 모르는 몇개의 클래식 소품과 비발디의 사계는 어디부터가 여름인지 겨울인지 헷갈리며 듣고, 그래도 노래가 아쉬워서 성당에서 올드팝송반과 성가반에 다닌다.
미사를 보면서 분명히 배운 성가인데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여전히 입만 크게 벌리는 나와 왕년에 젊은날 보컬에서 드럼을 쳐서 그래도 박자를 잘 안다는 남편은 어찌된 영문인지 지지리도 노래를 못해서 도움이 전혀 안되지만 서로 격려하며 열심히 조용히 부른다
만나지 못해도 친구가 되는 이도 있다. 취미가 독서라는 친구를 비웃으며 나 정도는 돼야 된다며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진득하지 못한 나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단편소설, 수필, 짧은 시 모음, 여행수필을 좋아한다면 무턱대고 좋은 사람이라한다. 또한 맨 뒤의 결말을 알아야 맘이 놓여서 끝을 알 수 없는 짜릿함을 즐기려는 이에게 근데 나중에 어떻게 됐어? 하며 핀잔을 듣지만 누군가도 그렇다고 한다면 확실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만난 적은 없지만 류시화 산문집을 좋아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글을 쓰는 한국일보 필자 정oo씨는 이미 내 맘 속에 친구이며,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함께 했던 박물관 친구들은 잊을 수 없고 ‘프로방스의 일년’과 ‘언제나 프로방스’의 작가 피터 메일을 좋아한다면 그는 이미 언제든지 내집에 와서 머물러도 좋은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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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