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해외 750만 동포들의 삶과 사연들이 동포언론과 SNS를 타고 전해져 온다. 그것은 본국에서 보면 비록 먼 바다 건너의 한 귀퉁이, 즉 원양일우(遠洋一隅)일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소식들이다. 우선 고달픈 이민 1세들의 헌신과 희생 ,성취의 소식들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치열하게 성장하는 2세들의 입지(立地)한 소식들도 가끔씩 올라온다.
본국을 떠나온 동포들이 겪는 공통점은 처음에는 대체로 기대와 희망, 도전, 성공 같은 것에서 점차 방황과 정착, 부평초, 향수(鄕愁)등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짙다. 그건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 살든지 아주 유사한 동질성을 보인다. 언어로 인한 문화적 차이를 나름대로 극복해 나가면서 한편 본국에 있을 때는 거의 느끼지 못하던 ‘인종적 벽’도 일상이다. 해외 한인들은 그곳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간에 현지에서의 성장과 발전이 타인종에 비해서 빠르고 가열차다.
그런 해외 동포들이 자신들의 삶의 끈인 조국을 위한 기대와 바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잘살고 부강한 조국, 전쟁을 종식하고 남북이 하나되는 통일조국, 선한 백성들이 홍익인간의 얼과 정신으로 선진민주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들이 그것이다.
주지했다시피 원양일우(遠洋一隅)는 ‘먼바다 한귀퉁이’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이 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두번 탄핵을 당했는데 그 첫번째 탄핵 당시의 탄핵서(彈劾書)에 등장하는 말이다. 두번째 탄핵은 지면상 생략한다. 그 원문은 이렇다.
1925년 3월 23일, 임시정부는 그를 임시대통령직에서 탄핵했다. ‘임시대통령 이승만 심판위원회'가 작성한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 수습과 대업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라고 지적했다. 1919년 9월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 첫 출근한 날은 1920년 12월 13일이다.
1925년에 탄핵되기 전까지 상하이에 체류한 기간은 6개월 밖에 안 된다. 그나마 그 6개월 동안에도 툭하면 상하이 밖으로 관광을 떠났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주로 하와이에 체류한 그는 독립운동가들의 눈에는 ‘원양일우에 편재'한 사람이었다. 임시정부가 그를 탄핵한 것은 출근 일수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성의가 없다는 게 핵심 사유 중 하나였다.
“대업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라고 말했다. 임시정부의 대업은 독립운동이다. 독립운동에 대한 성의가 없다는 것이 핵심적인 탄핵 사유였다. 이승만을 쫓아낼 때 임시정부는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둘 수 없는 자라고 규정했다. 임시정부는 그를 단 하루도 더 이상 둘 수 없다고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그를 임명했다.
두번이나 국민들로부터 탄핵 당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겉으로 드러난 내용이나 좋은 평가들은 대부분 한꺼풀만 더 들어가면 대부분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동들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했던 과정이나 굶주리고 험난한 이민선조들이 모은 독립자금들을 어떻게 했는지를 조금만 깊이있게 그 내막들을 알려고 하면 그 추악하고 파렴치한 사례들이 넘쳐난다. 그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들통이 나서 두번씩이나 국민의 심판을 받은 위인인 것이다.
일제 당시 미국에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미주의 대표적인 세분은 무장투쟁론의 박용만, 인물양성론의 안창호, 외교의 이승만이었다. 물론 이승만은 그의 언어능력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가장 쉬운 길이었다.
때로는 진정성이 엿보였다해도 결국은 국가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자신을 내세우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오죽했으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도 팔아먹는다.’고 단재 신채호는 일갈했을까.
40년만에 464번째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했다지만 그 동안 이전의 정부에서 선정을 못했던 일들의 이면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고, 윤석열 정부 덕분에 한번 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 것이다.
750만의 해외 동포들은 자신이 못다한 조국사랑을 그것이 역사적 인물이든지 현재의 지도자이든지 누군가에게 투영(投影)해 보면서 이민생활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박용만, 안창호, 서재필, 장인환은 못되더라도 조국의 좋은 일이나 낯내는 일에는 앞장서고 힘들고 귀찮은 일에는 원양일우(遠洋一隅)의 심정으로 바라 보게하는 그런 인물들을 대한민국 정부는 내세우지 않았어야 했다.
<
강창구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