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를 썼을 때 2023년인데 2022년이라고 써서 2023년으로 고치고 initial sign을 한 것이 바로 어제 같았다. 오늘은 내가 2024년인데 2023년으로 수표를 써서 다시 고치며 혼자 “아 참 세월이 빨리 가는구나” 하는 날이었다.
근래 신문에서 백악관으로부터 지근거리에 있는 Rock Creek 파크에 사슴이 넘쳐나서 가정집까지 나타나 골치를 아프게 한다며 그 숫자를 줄이기 위하여 사슴사냥을 허가한다는 기사를 읽고 문득 나의 공상의 세계는 200년 전쯤으로 돌아간다.
‘OK 목장의 결투’, ‘셰인’ 같은 서부 활극영화를 보면 카우보이들이 권총을 차고 위풍당당하게 커다란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린다. 하지만 카우보이들은 조랑말을 타고 소 떼를 몰며 소들을 늑대 같은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주 임무이었다.
카우보이들이 일이 끝나고 지친 몸이 갈 곳은 주막이었다. 가난한 그들에게 돈이 있었겠나? 권총 차는 허리 혁대에서 총알 하나를 빼내서 주막집 주인에게 주면 작은 컵에 술을 부어 주었다. 그 술잔을 그래서 총알 shot이라고 불렀다.
이 때 사냥꾼이 거들먹거리며 나타난다. 목도리(?)를 하고 말이다. 그 목도리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사슴 가죽(Buck)이었다. 주막 주인은 사슴가죽의 흥정이라도 붙이려는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술을 병째로 내놓는다. 그 시절에는 어설픈 종이돈 Dollar 보다는 사슴가죽(buck)이 더 인기였지 싶다.
오늘 날 five dollar, ten dollar라고 하지 않고 five bucks, ten bucks라고 하는 말을 흔히 듣는다. 바로 그 사슴가죽 buck이다.
나의 200년 전 즈음의 과거로의 여행은 이번에는 한국, 당시의 조선으로 날아간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KBS 드라마인 고려 거란의 전쟁이 대단한 인기이고 강감찬 장군 이야기가 상종가를 이루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당시 임금 광종이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가면서 지방 호족들의 횡포를 보고 전쟁 후 이 횡포를 타파하고자 과거제도를 도입한다. 그 후 무신시대, 몽고 침입, 원나라 간섭, 그 후 조선은 개국공신과 유림들과 권력 다툼, 사색당파 싸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으로 아무래도 과거다운 과거는 바로 200년 전이 아니었나 싶다.
유식한 양반 가족이야 삼국지, 구운몽, 사씨남정기 같은 것을 읽고 있었겠지만 대중들이야 과거 보러 가는 한양 길에 주막에 들러 수절과부와 로맨스, 또는 불륜과 치정이야기, 처녀 귀신 복수 이야기, 노상강도 이야기 등등의 이야기의 꽃을 피었던 것 같다.
할머니 무르팍을 베개 삼아서 할머니가 “옛날 옛날에 말이야…” 하면서 들려주는 200년 전 조선 옛날이야기, 그리고 사슴 가죽 한 장으로 인하여 술 한 병 마시는 미국 서부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빠르게 흐르는 세월의 정초에 그 빌어먹을 정치 이야기를 떠나 Rock Creek 파크의 넘쳐나는 사슴 기사로 시작된 공상으로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과거의 나의 여행이었다. 200년 전 총알 한 개의 술이여! 할머니의 무르팍이여! 영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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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 문인/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