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이지 않는 공포 느끼며 인간의 악에 대한 무감각성 일깨워

2023-12-22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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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½(5개 만점)

▶ 수용소 소장과 가족의 일상그리며 가해자 입장에서 본 ‘홀로코스트’

보이지 않는 공포 느끼며 인간의 악에 대한 무감각성 일깨워

루돌프 회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소장(오른쪽서 세번째 백색상하의에 팔장을 낀 사람) 가족과 이들 친구들의 가족이 루돌프네 정원에서 즐기고 있다. 담 너머 수용소 건물이 보인다.

나치의 유대인 살육(홀로코스트) 영화는 무수히 많은데 거의 모든 영화가 피해자의 눈으로 본 것인데 반해 이 영화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본(아니 외면한) 독특한 것으로 보고 있자면 한기가 느껴진다. 악명 높은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 소장과 그의 가족의 일상을 무감할 정도로 냉철하게 그렸는데 이 가족의 집이 수용소와 담하나 사이를 두고 있어 마치 천국과 지옥이 이웃처럼 공존하고 있다.

수용소장은 루돌프 회스(크리스찬 프리델)로 그는 아내 헤드빅(산드라 휠러)과 다섯 아이의 남편이자 아버지. 루돌프의 크고 깨끗하고 단정한 집은 유대인 수용소와 담 하나를 사이에 놓고 있는데 담 너머로 수용소 건물과 학살된 유대인 사체를 태우는 화장장의 굴뚝이 보인다.

영화는 유대인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을 보여주는 대신 그런 고통과 죽음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리 모두가 사는 것과 같은 평번한 일상을 사는 루돌프 가족의 면모를 그리면서 인간의 악에 대한 무감각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을 쓴 영국의 조나산 글레이저는 피해자들인 유대인들의 참상을 보여주지 않고 가끔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화장장 굴뚝 위의 잿빛 연기와 유대인들을 수송하는 기차의 수증기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이 더욱 가공스런 공포를 느끼게 하는데 마치 공포영화와 서스펜스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마저 갖게 된다.


루돌프는 직업에 충실한 가장이요 헤드빅은 가사에 충실한 주부로 영화는 이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가정생활과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묵묵히 부동자세로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잡아내고 있다. 잘 정리되고 다양한 꽃밭이 있는 루돌프일가의 삶이 천국의 그 것과도 같다면 바로 담 너머 유대인 수용소의 삶은 지옥의 그 것.

루돌프는 참모들과 함께 사체를 보다 빨리 화장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고 헤드빅은 유대인들에게서 압수한 모피 코트를 입어보고 아이들은 유대인들의 금이빨을 수집하는데 그들의 이런 일상이 담 너머 저질러지고 있는 인간 말살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중에 진행돼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충격을 느끼게 만든다.

인간의 악에 대한 불감증을 가혹하고 냉정하게 해부한 영화로 감정이나 감상성이 완전히 세척돼 한기를 느끼게 하는데 글레이저의 정확하고 확신에 찬 연출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내지르는 비명을 연상시키는 불협화음과도 같은 음악과 음향효과. 프리델의 소름끼칠 정도로 냉혹한 연기와 휠러의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올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LA 영화 비평가협회의 2023년도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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