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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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기다림의 퍼즐

2023-12-13 (수) 장재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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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짜리 연극이다.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게된 이유는 약속된 구원자, 희망의 등불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자 기다리다 못해 절망에 지친 현대인의 내면의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양로원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방문하곤 했다. 차를 몰고 입구에 들어서면 각 방 창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얼굴들이 고개를 내어놓고 열심히 지켜본다. 아예 현관에 나오신 분들도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사람이 아닐 때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에서 스쳐 지나가던 실망의 표정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람은 누구나 기다림 속에서 살아간다. 전화를 기다리고, 편지를 기다리고 손님을 기다린다. 생일을 기다리고 결혼기념일을 기다리고 첫 눈을 기다리고 여행을 기다린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전쟁의 소문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키워가기도 하고 그 기다림 속에서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간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황지우 시인의 시가 있다. 시인은 어느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온통 마음이 그에게 먼저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음과 생각이 보고 싶은 그 사람을 미리 생각하고 가득 채우게 되는 자신을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그 사람으로 내 마음이 아름다운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때로는 간장을 태우듯 온 몸을 녹아내리게 하고 뜬눈으로 밤을 설치게도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기다리며 살 때가 행복한 것이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외로움과 설렘 사이의 그 빈 공간 안에 세상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값진 보석들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력으로 12월3일에 대림절(Advent)이 시작되었다.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다. 기다리며 그 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기다림이다. 기다리며 기대와 설렘으로 내 마음을 말씀과 기도로 사랑과 비전으로 채우는 것이다.

대림절 강단에 촛불 5개가 꽂혀있다. 3개의 보라색과 하나의 붉은 색(혹은 분홍색), 하나의 하얀색으로 구성되어진다. 첫째 보라는 희망, 둘째 보라는 평강, 셋째 보라는 기쁨을 상징한다. 성탄절을 바로 앞둔 바로 직전 주일에는 붉은 색을 점화하는데 이것은 사랑을 상징한다. 초의 색깔이 점점 짙어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욱 더 가까이 오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날에 점화하는 하얀 초는 어둠속에 살고 있던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빛으로 오신 주님을 소망 중에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림절 4주 기간 동안 둘째 주일(올해 12월10일)을 성서주일로 지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성육신하셔서 우리의 빛이 되셨다는 의미에서이다.

대림절은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희망을 다시 찾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오늘을 이기며 내일을 바르게 준비하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인생은 기다림이라는 퍼즐을 연결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것이다.

<장재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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