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는 작가 김영하의 책 제목이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여행의 이유도 있지만 내가 생각 하는 여행의 이유도 있다. 사진 한 컷으로 다 담지 못하는, 한 꼭지의 글로는 충분히 표현이 안되는, 그러기에 눈에 담아 두어야 하는, 여행의 이유. 두 팔 벌리고 가슴으로 깊이 안아본다. 세상은 참 넓고 끝없는 호기심은 아직도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또 달뜨게 한다.
한여름, 길을 떠나며 쉬운 여행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흔 언저리의 6명이 함께했던2번째 유럽 여행. 지난 번엔 20여일이었고 조금 짧았던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계획 하다보니 28일이었고, 일정의 경중을 따져 중간에 크루즈를 8일간 넣는 것으로 나름 시간과 체력의 안배를 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조금씩 삐걱거렸던 길 위의 시간들. 돌아가면서 감기 몸살을 앓았고, 꼭 보고 싶었던 곳을 들리지 못했던 곳도 있고, 돌아와서 휴유증이 심했다. 한달여 몸을 추스려야 할만큼 아팠다. 우리들의 나이가 이만큼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준 ‘길 위의 시간들’.
로마의 북적이고 웅성거렸던 거리, 피렌체의 우아한 유럽 문화의 진수, 이탈리아 남북의 문화의 차이,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를 지나며 아름다운 바다와 석양과 떠 있는 섬들 사이에서 황홀하게 자연의 경이로움에 취했던 시간. 쇠락해 가는 나라, 그리스와 그 안의 아테네에서 만났던 역사의 잔해. 기대 이상으로 활력이 넘쳤고 풍성한 추억이 제일 많아, 짙은 향이 오래가는 튀르키예. 28일, 4개국, 20여개의 도시, 23꼭지의 브런치 글, 2천여장의 사진, 누런 봉투에 가득 담겨진 그날의 메모와 동네 지도, 엽서, 쓸만하다고 생각되어서 넣어 두었던 자료들.
이 모든 것들은 한번 만나는 것이고, 인생 속에서 휙 지나가는 작은 부분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기억의 매듭을 지어놓고 싶었다. 어느 날 매듭이 느슨해 지면 다시 한번 글들을 찾아보고, 사진을 들추어 보며, 매듭을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시간이 천천히 오기만을 기다리는 오후, 가슴이 따뜻해진다. 추억의 시간들이, 장면들이, 에피소드가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동안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을 확신한다.
길위에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우리들을 다시 만난다. 좋은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 시간 또 오늘, 이렇게 함께 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열기구 안에서 날고, 스피드 보트를 타며 스피드와 파도를 즐기고, 푸른빛 호수에 발을 담그며 상념에 젖고, 먼바다의 분홍빛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할 줄 아는 우리들. 인생의 책장을 서서히 넘기며, 남아있는 페이지가 얼마안된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감사하며 웃을 수 있는 지금, 그대의 따뜻한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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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