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흰나비로 탈바꿈하다

2026-01-26 (월) 12:00:00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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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쭉 뻗어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다. 얼굴보다는 머리 스타일이 잘 나오도록 이리저리 각도를 맞춰본다. 가끔, 화장이 잘 되었거나 새 옷을 입었을 때, 입가에 어설픈 미소를 걸치고 한 컷 찍어 보지만 실물보다 풍성하게 나오니 사진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엔 어쩔 수 없다. 한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해 머릿속이 시끄러우니 친구들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한달에 한 번씩 해오던 흰머리 염색을 오 개월 동안 하지 않았다. 염색약을 사다 놓고 쳐다보기만 하며 인내심으로 버텼다. 그러나 흰머리가 늘어날수록 몸도 마음도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염색하더라도 검은 머리칼을 유지하며 조금 더 젊게 지내고 싶은데 의사는 나를 볼 때마다 염색하지 말라고 권한다. 눈 건강과 알레르기 피부에 염색약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나도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미 백발을 가진 남편이 “당신은 흰머리도 이뻐” 라며 위로를 하나 거울 속엔 흰나비로 탈바꿈하려는 듯 변해 가는 내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흉허물 없는 친구 여섯 명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흰머리가 어울리면 1번, 염색해야 한다면 2번에 투표하라고 부탁했다. 참으로 할 일 없는 짓이라 하겠지만 나로서는 나름 심각한 일이다. 마치 세월이 정해 놓은 젊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겨우 버티고 지내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노년으로 유배당하는 듯한 허탈감이 밀려온다.


그물망을 짜서 머리를 가려보기도 하고, 모자를 썼다 벗었다를 하며 흰머리와 씨름을 거의 반년 동안 해 왔으니, 이제는 가부간 정신적인 갈등을 끝내야 했다.

투표의 결과는 흰머리가 좋다에 5표, 아직은 염색을 해야한다에 1표, 단 한 명만이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뀔 때까지는 염색하라고 조언한다.

그 옛날, 어머니는 낡은 양재기에 염색약을 끓여서 머리에 바르시곤 했다. 가끔은 내가 칫솔에 약을 묻혀 뒷머리 염색을 도와 드리면 무척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머리에도 흰서리가 남들보다는 일찍 찾아왔던 것 같다.

염색의 긴 여정이 끝난 뒤, 새까매진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은비녀로 쪽을 찌르며 하시는 말씀은 “개운하다”였다. 그러나 세월을 속이는 것이 염색이라 하지만 언제까지 가릴 수 있을까. 어머니는 노후에 은빛으로 빛나는 커트 머리를 하셨다.

누가 오는 세월을 막고, 누가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흰머리는 단지 색을 만드는 멜라닌 색소가 줄어들어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흰머리의 어르신들이 건강 악화와 무너지는 자존감 속에서 젊은 날의 영광마저도 상실감으로 느끼며 쓸쓸해하실 때 인생의 허무를 보는 것 같아 슬프다.

그러나 세월의 속성은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흰머리라는 이정표 앞에서 나를 다시 한번 다독이며 주어진 시간과 사이좋게 공존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동백기름으로 흰머리를 매만지고, 긴 치마에 시골 할머니들의 꽃무늬 누비 조끼로 복고적인 패션을 연출했다.

오늘로써 나는 노년의 첫 발을 내딛는다. 이제는 탈바꿈했으니 우아하고 고결한 아폴로 나비 (Parnassius apollo)를 닮아 볼까, 개운한 마음이 날개를 편다.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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