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아버지와 밤비

2026-03-09 (월) 12:00:00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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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스산하게 분다. 그리운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바람이다.

샬럿(Charlotte)에서 교우가 보내준 설경 사진을 보고 나니 놀라움과 함께 마음이 심란해진다.

샬럿은 겨울에 한 두 번 눈이 살포시 내려 앉는 도시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삼십 센티미터나 쌓였다니 사람들이 흥분할 만하다. 하지만 사슴들은 추운 이 겨울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 품에 안겨 우유병을 빨던 아기 밤비는 얼마나 자랐을까. 이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내 마음엔 걸음마도 서툴던 꽃사슴 밤비가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 집 정원 나무 그늘에 아기 사슴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꽃무늬가 예쁜 아기 사슴이었다. “네가 왜 거기 있니?” 가까이 다가가도 노천명 시인의 사슴처럼, 슬픈 눈빛으로 바라만 볼 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얘를 어떻게 하지? 동물 보호국에 전화를 해야 하나?’ 마음이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슴은 기진한 듯 눈을 감고 있으니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우선 무엇인가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으로 정신없이 달려가 우유와 젖병을 사서 왔다. 사슴 목을 조심스레 끌어안고 젖병을 입에 물리자 기특하게도 몇 모금 빨아 먹었다. 집 앞을 지나던 청년이 우리를 보더니 사슴에게 우유를 주면 안 된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사슴에게 기생하는 벌레가 옮을 수도 있으니 만지지 말라고도 했다. 또한 새끼에게 사람 체취가 묻어 있으면 어미 사슴이 데리러 왔다가도 새끼를 버리고 간다는 무서운 말도 했다. 그날, 일이 있어 부득이 집을 비워야 했다.

“어미가 데리러 올 때까지 꼼짝하지 말고 있어라” 당부 하고 나갔다가 돌아오니 사슴이 누워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제 어미가 데려갔으면 다행인데, 어디를 헤매다 쓰러지지는 않았는지 걱정이었다. 잠시의 만남이었는데도 가슴에 아릿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온 동네를 헤집으며 찾아다녔다.

사흘 후, 밤비가 다시 우리집을 찾아왔다. 어미도 없이 혼자 씩씩하게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와 보라는 남편의 격앙된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남편과 밤비가 정원에서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와 꽃사슴 밤비가 한 풍경안에 들어 있었다.

순간, 주위는 마치 시원(始原)의 세상으로 되돌아간 듯 평화와 안식이 깃든 땅으로 변했다.

그 후로 할아버지는 목을 길게 빼고 정원에 나와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도토리를 주워 모으고, 해바라기씨도 문간에 놓아두었다. 사슴은 무리 지어 움직이는 동물이다. 그런데도 그날, 밤비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전하고 싶어 혼자 내려 왔을까. 말을 하지 않아도 밤비의 마음이 느껴지며 자연을 통째로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밤비는 다시 우리 곁에 가까이 오지 않았다. 무리에 섞여 멀리서 얼굴을 몇 번 비추는 듯하더니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남편은 산책길에서 어린 사슴을 볼 때마다 “쟤가 우리 애 아니냐?” 하고 묻곤 했다. 스쳐간 밤비와의 인연은 내 안에 머무는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세속에 부딪쳐 목마를 때면, 그 시는 영혼의 샘이 된다. 자연과 숨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 결국 우리가 그리워한 것은 시원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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