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꽃이 지면 배가 고프다던 친구

2026-04-13 (월) 12:00:00 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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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공기가 하늘을 열자, 햇살은 바람 위로 부드럽게 흘렀다. 거리의 잎새들은 ‘신세계 교향곡’을 노래하듯 반짝였고, 이름 모를 꽃잎들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꽃바람을 일으켰다. 작은 웃음소리 같은 햇살이 꽃 길 위로 시간을 천천히 덥혀가고 있었다.

오래전 이맘때 친구와 청계산을 올랐다. 햇살은 이미 능선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골짜기를 따라 오르자 양쪽 언덕에 분홍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에 스치는 꽃잎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우리는 그 앞에서 말을 잊은 채 향기와 햇살로 마음을 채웠다. 세상이 온통 꽃으로만 이루어진 듯했다. 산을 덮은 분홍빛이 마음을 먼저 풍성하게 했다. 사람은 때로 밥보다 풍경에 먼저 배를 채운다. 꽃의 아름다움 앞에서 허기는 잠시 잊힌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는 길, 꽃이 눈에서 멀어지자 마음의 충만이 사라지고 허기가 밀려왔다.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 나는 꽃이 지면 배가 고파. 지금이 그렇네.”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웃었지만 나는 그 말의 뜻을 오래 곱씹었다.


꽃은 잠시 눈과 마음을 배부르게 하지만 삶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몸의 배부름이다. 산길을 내려와 따끈한 국물을 들이켰을 때 꽃과 밥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나가 사라진 자리를 다른 하나가 채우며 살아간다.

세월이 흘러, 친구는 캐나다로 이민해 마켓을 열었다. 삶의 꽃을 크게 피워 보겠다는 의욕으로 가득했던 친구는 꽃망울이 터지듯 싱그러웠다. 혼자 김치를 담그고, 손님을 맞고, 상품을 정리하며 하루를 가득 채우는 시간은 마치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순간 같았다. 하지만 늘어나는 일의 무게는 친구의 몸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노동, 예측할 수 없는 장사, 점점 커지는 책임으로 처음의 설렘은 시들어갔고, 피로는 쌓여갔다. 결국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육신의 허기를 잊고 마켓의 허기만채우려 했던 결과였다.

친구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꽃보다 너무 컸나 봐. 나는 늘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에 배가 고팠어. 다들 나보고 똑똑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엄마를 위해 공부했고, 빚진 마음으로 좋은 의사가 되려는 강박으로 살았어.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꽃이 지면 난 왜 배가 고플까? 이제는 힘이 부친다”고 말했다.

청계산 언덕에서 함께 웃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꽃잎처럼 흩어진 인연의 빈자리는 종종 허기처럼 다가온다. 친구가 말한 ‘배고픔’은 단순히 입의 허기가 아니라, 방향을 잃고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 찾아오는 신호였다. 결국, 삶이 피어오르는 순간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 허기는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빈자리이기도 했다.

친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꽃의 크기를 먼저 살폈어야 했다. 모든 꽃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꽃은 짧게 피었다가 지고, 다시 피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다. 꽃이 진 자리에 찾아오는 허기는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새로운 꽃을 기다리게 하며, 또 다른 시작을 꿈꾸게 한다.

나는 꽃이 피는 계절마다 “꽃이 지면 배가 고프다”던 그 단순한 말을 함께 기억한다. 청계산 진달래는 마음을 배부르게 했지만, 산 아래로 내려온 순간 몸이 먼저 밥을 찾았다. 그것은 나와 친구가 산에서 배운 작은 진리였다.

<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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