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일까 사뭇 궁금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라는 구절 때문에. 너도 나도 스토너인 세상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스토너 인생의 주안점인 학문적 탐구는 소설 전체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골고루 담겨 있다. 그 메인의 줄거리 안에 보통사람들이 갖는 현실의 결혼 생활, 무심하다못해 우울증이나 조현증 같은 아내의 모습을 밀어내지 않고 견디는 주인공. 제자와 사랑에 빠지면서도 학문적인 탐구가 그들 관계의 촛점이 되고, ‘대학은 소외된자, 불구가 된자들이 세상에서 도망 칠 수 있는 피난처’, 라는 그 교정. 그 안에서 삐딱한 제자와 학장과의 갈등도 이어진다.
농사만 짓다가 죽은 아버지과 소도시의 은행장으로 부정 축재를 했던 장인의 자살. 딸 그레이스와의 문제 등 생기며 보통 사람들이 겪는 삶의 모습들에 당면한다. 삶 안에서 만나게 되는 자잘한 것들은 교수나 박사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늘 존재하는 걸림돌들이 이어지고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다. 만나는 사건들 사이사이에서 만났던 문학적 표현도 많이 공감이 갔다. 비유와 은유 안에서 고운 색깔의 유화를 만난다.
교정이라는 울타리, 대학이라는, 박사라는, 교수라는 타이틀이 줄 수 있는 허용의 한계도 어느 사회와 다르지 않다. 사랑조차도 그 안에서 이루어졌고, 연인이었던 제자 캐터린은 홀연히 떠난다. 불륜관계에 있을 때 가정은 더 평화롭게 그려진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일지 모르나, 불륜의 사랑은 쫄깃함으로 오래 남아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스토너. 그도 60이 넘고 정년을 바라보며 죽음의 시간이 바로 눈 앞에 와 있음을 알게된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주인공. 책의 마지막 장에 서술 되어 있는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는 이렇게 평안 할 수 있을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주인공의 모습은 한 생애에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평화로움 아닐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은 책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며,’ 손가락에 힘이 빠지며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그의 마지막 시간)…방의 침묵 속으로(죽음의 확인) 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 하냐”는 책 속의 질문에 ‘사는 일은 참 해 볼 만한 일이다’라는 말로 현문우답을 하고 만다. 마지막 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주인공.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학장이나 주임이 되지도 못했고, 연구업적이 세상을 바꾸어 놓지도 않았다. 불같은 사랑도 붙잡아 두지 못했다. 무미한 아내와 가정과 그안에서 사생아를 낳은 딸이 있을 뿐이다. 보통 평범한 한 사람이 사는 이야기, 그 평범이 모여 이 세상을 이룰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좋은 소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덴버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던 작가, 존 위리엄스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책은 출간 된지 50년이 지나서야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는 저녁이다.
<
전지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