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참 푸르다. 오늘처럼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면 하얀 낮달이 나와 있지 않을까 괜스레 살펴보게 된다. 어린시절에는 새 색시가 세상 구경 나온 듯 수줍게 떠있는 하얀 반달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교 길에도, 엄마따라 오일장에 가는 신작로 길에서도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때는 어떻게 달이 낮에 나왔는지 관심 없었고, ‘낮에 나온 하얀 반달’ 동요를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노래 불렀다.
푸른 하늘이 불러온 기억의 편린(片鱗)이 ‘이제라도 하모니카를 배워 볼까?’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며칠후 집 앞에 하모니카가 배달 되었다. 아들이 어미 마음을 읽었는지 싼타 노릇을 한 것이다. 역시, 배움에는 때가 있는가 싶었다. 하모니카는 들숨, 날숨으로 리드라는 울림판을 떨게하여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인데 숨이 버거웠다. 마음속엔 아름다운 선율이 춤을 추지만 나오는 소리는 불협화음이 대부분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는 속담처럼 열심히 연습했다.
어느 날, 온 가족이 집에 모였다. 나는 자식들 앞에 발표회를 가졌다. 어디다 내놓을 실력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식들 앞에 건강한 정신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열댓곡 쯤 불었던 것 같다. 제일 먼저 손녀들이 양손 엄지척을 해주었다,
“엄마, 공원에 가서 모자 벗어 놓고 버스킹(busking) 하세요.” 딸이 웃으며 말 했고,
“내가 기타 칠테니 나랑 합주해요.” 하며 아들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리코더를 어설프게 불면 “아이구, 내 새끼 천재네!” 감탄사로 자신감을 북돋아 주던 어미가 이제는 자식으로부터 격려를 돌려 받았다.
코리아타운의 시니어 하모니카 연주팀이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NHL) LA 킹스 하키경기에 등장해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불었다. 이만 여명의 관중들이 일어나 떼창을 하며 앵콜을 외쳤고, 미국역사상 하모니카로 국가를 공연한 적은 처음이라며 주류사회에서 대서특필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어르신들의 평균 연세는 팔십세라고 한다. 그들은 하모니카 연주로 평생 못 받던 관심을 받았다고 감격의 눈물을 지으셨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왠지 푸른 하늘에 수줍게 떠있는 하얀 낮달이 생각났다.
달은 밤이나 낮이나 항상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단지 태양과 달의 위치가 가까우면 태양빛 때문에 보이지 않다가 서로 멀어지면 낮에도 하얀 반달을 볼수 있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식의 앞날이 태양과 같이 빛나기를 간구하며 스스로는 빛바랜 낮달 같은 인생을 사셨다. 자신의 꿈과 자아 실현의 욕구는 미루고 미루다가 가족으로부터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시도해 보나 육신의 노화가 앞을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굳세게 일어서 스스로 빛나는 달이 되어 박수갈채를 받는 어르신들이 존경스럽다. 인생의 희비애락이 녹아있는 하모니카 선율이 큰 울림이 되어 창공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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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옥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