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시장에서
2025-12-01 (월) 12:00:00
전지은 수필가
어두운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선다. 눈까풀에 달려 있던 잠마저 달아나는 시원함. 남대천 제방 둑을 달리는 길에서 어릴 적 추억이 창으로 스쳐간다. 방학이면 좁은 제방 둑 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으며 바다로 향했던 시간들. 싱그러운 젊음이었고 풋내나는 사랑이었다. 추억은 빛 바랜 수묵화가 되어 지나가고, 창으로는 새벽을 깨우는 강바람만 시원하게 들어온다.
‘강릉 새벽시장’ 지나 다니며 어디인지는 알았지만 그곳을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이 서는 시간은 오전 4-9시.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혼자 가는 것이 좀 그래서. 같이 동행하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절친은 꿀 잠을 잘 시간. 나이가 들며 잠 패턴이 달라진 나는 충분히 활동을 할 시간이었지만. 혼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제 한번은 꼭 가 보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다 드디어 실행했다.
아직 어두운 남대천변 고수부지. 온통 가로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난장이 섰다. 커다란 비치 파라솔을 펼치고 정해진 구획 안에 각자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펼쳐 놓았다. 말 그대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시골장터. 크지는 않았지만 살거리는 충분했다. 흑임자 두부, 잣 두부, 연 두부, 콩나물에 도토리묵까지. 장 바구니가 가득했다.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어서, 짐을 한번 부려 두고 다음 장바구니를 들고 더 꼼꼼히 장을 누빈다. 각종 과일, 그 비싸다는 금 배추, 각종 야채. 반 건조 어물. 김치 등을 파는 반찬 가게. 약재들. 햅쌀과 햇 콩들.
천천히 살피며 걷는 난장에서 만난 사람사는 냄새. 한쪽에서는 모여서 이른 아침을 먹고, 또 다른 쪽에서는 달콤한 냄새 가득한 모닝 커피를 마신다. 멀리 뻥튀기 트럭의 고소한 냄새가 난장에 가득하고 ‘펑펑’ 소리에 맞추어 내 발걸음도 가볍다.
드디어 송이 파는 곳을 몇 군데 찾았다. 송이는 좀 핀 것이 향이 더 진하다. 몇 군데에서 가격을 비교해보고 성산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앞에서 흥정을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고 아무리 떼를 써도 가격을 깎아 주거나 덤 하나는 없었다. 그래도 정겨운 강릉 사투리의 아주머니가 엊그제 대관령 산자락에서 캤다는 송이가 믿음이 갔다. 송이는 향도 짙었고 모양도 꽤 괜찮았다. 소중이 송이를 받아 들고 다시 차로 돌아오며 새벽장을 뒤돌아본다. 사람들이 많아 졌다. 제법 북적 거리는 시골 새벽 장. 부지런한 상인들과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싸게 먹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삶이 숨쉬는 현장. 웅성거림이 정겨운 곳. 왜 이곳을 아직 한번도 안 왔었을까 싶었다. 다음엔 남편과, 아들과 함께, 그 다음엔 꿀 잠을 자고 있을 절친을 깨워서. 그리고 또 혼자서.
남대천 둔치 새벽시장에서 만나는 사는 이야기가 정겨운 사람들. 이곳을 왜 이제야 왔을까 싶었다. 고향 강릉, 수선스럽게 아침을 여는 새벽 시장에서 사람사는 모습을 본다면 과장일까? 소소한 행복을 안고 돌아 오는 길, 잰 걸음의 인파 속에서 먼 하늘 여명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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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