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내게 무심했던 자동차 타이어에 정성들여 공기 빵빵 채워주고 까만 선글라스에 동쪽햇살 모으며 활짝 제친 차창사이로 스카프 휘날리며 하이웨이를 달리는 기분이다. 더구나 가을 모국 여행은 높고 파란 하늘아래 오색 찬란한 단풍을 바라보는 설레임과 시골에서 촘촘하게 달린 감을 주홍으로 천천히 물들이는 감나무를 바라보는 흐뭇함이 교차되며 풍선처럼 기대가 부푼 여행이다.
이제 태평양을 건너게 될 비행기에 앉았다. 여객기도 내 마음을 아는지 13년의 긴 공백을 뚫고 힘차게 하늘높이 올라간다. 그동안 나의 조국 한국은K-pop문화는 물론 라면, 김치등의 음식도 세계적인 각광을 받아가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위상이 높아져서 뿌듯하다.
직장이며 가정에 설치된 첨단의 IT기술로 인해 관공서나 아파트 출입에 경비, TV, 은행업무 등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서 나를 별 세계로 이끌었다. 도착한 인천공항은 복잡하지만 공중도덕을 지키며 줄을 서고 양보하는 시민들의 공중의식이 느껴졌고 질서있게 타고 내리는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깨끗한 화장실이며 공중시설이 놀랍다.
동양정신문화연구회가 주관한 이번 여행은 그동안 노영찬 교수님을 모시고 강의실에서 배웠던 곳을 답사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문화를 꽃피운 불교와 유교를 아우르며 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역사속의 시간여행이었다.
머무르던 호텔앞에 아침 일찍부터 대기하던 버스가 이미 시월중순의 상쾌한 아침공기를 가로지르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미국오기 전 고국에서 머물렀던 세월만큼 각자에게 머문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 일행 모두는 회상에 잠긴 듯 버스 안은 조용하다. 누런 벼이삭도 IT 공화국답게 발달한 기술로 이모작을 하기 때문인지 키가 작아졌다.
한국은 인터넷, IT 통신망, 생명공학, 반도체, 정밀기계, 또 인공지능, 5차 통신 기술(5G)을 적용한 무선 통신장비, 자율형 자동차, 최신 무기를 탑재한 드론등 첨단기술 산업에 치중하고 대학에서도 첨단 융합학부가 생기고 있다. 한국경제는 세계 10위에 속할만큼 발전했다. 한국은 첨단기술을 쉽게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기술 수용능력이 놀랍다.
전주에서 시작한 우리 여행은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거리를 걷는 젊은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는 순간 압도되었다. 태조 이성계를 모신 전각을 본 후 송광사를 둘러볼때는 유난히 예쁜 소나무들이 고즈넉한 저녁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순천 송광사는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사찰에 속한다. 섬의 모양이 오동나무잎을 닮았다는 오동도, 거북선, 이순신 장군의 용맹스런 모습이 담긴 이순신 광장, 해상 케이블 카에서 본 여수는 저절로 환성이 터지는 추억을 안겨주었다. 진주 촉석루에서 마주한 논개의 의암에서는 그녀의 애국심이 눈물겨웠다.
경주 불국사를 거쳐 신라 고분 내부를 볼 수 있었던 천마종을 지나 첨성대는 시간상 눈바래고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15세기에 건축한 장경판전에 감탄했다. 대장경을 보관하기위해 실내온도와 습도가 유지되게 만든 목조판이 500여년동안 벌레는 물론 화재에도 훼손되지않게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선조들의 우수성이 지금도 불가사의하다.
머물던 호텔로 파도가 밀려 들 것 같았던 부산송도 해수욕장, 구름다리, 경포대에서 걸었던 모래사장… 지금도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조선시대의 유교 숨결이 숨쉬고 있던 안동하회마을,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린 도산서원, 특히 서애 류성룡을 모신 병산서원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낙동강이 주위를 흘러 유난히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병산서원은 경주 옥산서원과 더불어 한국의 양대서원으로 꼽힌다.
기대가 큰 마지막 날이다. 문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선 조선중기 문인이며 화가, 시인,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인 이율곡 선생의 얼이 서린 오죽헌을 관람했고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과 그의 누나 허난설헌이 불행했던 삶을 섬세한 필치와 애상적 시풍으로 남긴 많은 한시와 서예, 그림을 보았다. 허초희(본명)는 규원가와 난설헌집으로 유명하다.
세가지 한(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품고 세상을 떴다는 허난설헌이 우리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어둑어둑해지는 강릉시내의 긴 그림자를 따라 성현들의 가르침을 확인하던 문화답사 5일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내리는 빗속에서, 아쉬움도 창가에 길게 서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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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