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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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는 있으나 사고력이 모자란다

2023-11-27 (월)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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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교 시절 KBS 방송국에 한 음악 프로가 있었다. 몇 명이 참가하는 게임으로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하면 참가자 중 누가 스톱! 하면서 어떤 작곡가의 무슨 음악이란 걸 알아 맞추면 이기는 프로이었다.

K 라는 내 친구는 어느 음악이든 첫 소절이 막 시작하면 다른 참석자가 음악 첫 소절을 들을 겨를도 없이 스톱! 하고 나선다. 예를 들자면 “베토벤 작곡 심포니 5번 운명” 하면서 100% 맞추니 게임의 승리를 혼자 독차지하는 꼴이 되어 시청자에게는 그 프로가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그 친구에게 양해를 구해서 출연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당시에 그의 해박한 음악 지식에 감탄하면서 그가 앞으로 음악의 대가가 되리라 생각했으나 그 친구는 평생의 어린이 동요나 하다못해 뽕짝 트롯 하나 작곡 못하고 이제는 고인이 되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가 하면 요즘 한국에서 수능시험이 있다. 그런데 그 수능시험이란 것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이거나 대부분 사지선답(四枝選答), 즉 4개 중 하나를 고르는 시험인고로 모든 학교에서의 수업이 그것을 기준으로 입시 준비를 하다가 그러한 입시시험을 치르고 학교를 입학한 사람들이라 모두들 순간의 답을 얻는 재치는 있으나 사고력이나 분별력을 요구하는 훈련을 못 받아 사고력이 모자라지 않나 싶다.


미국 대학 입시에서의 에세이(Essay,) 다시 말해서 글짓기라 할까 그러한 문장력을 필수로 하는 것이 한국 입시에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동기는 나의 외손녀가 고교 1년생인데 지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Odyssey) 읽기가 에세이 교과 과정인데 꽤나 어렵고 재미를 못 느낀다고 딸이 이야기하길래 손녀 딸에게 옛날 영화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율리시스> 영화를 먼저 보게 하면 재미를 붙일 것 같은데 어떠냐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다. 미국에서 교육받는 아이들도 책을 읽고 사고력을 키우는 수준이 너무 높아 애들이 책 읽는 것에 흥미를 잃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내가 뜬금없는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은 지난 며칠간 유 튜브에서 한국 국회 국정 감사를 지켜보다가 하도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다.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마다 그래도 각 정당에서 뽑힌 논객일진데 우선 장황한 서론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니 틀림없이 본인이 아니고 비서들이 어느 포맷이랄까 또는 인공 지능(AI )같은 곳에서의 서식과 내용을 딴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좌우간 그 서론을 몇 분 장황하게 늘어 놓고 나서 국무위원에게 질의 응답을 하는데 그 내용이 매우 정도가 아니라 한마디로 유치가 극치의 재치문답이다. 다시 말해서 행정가가 아니라 정치가라면 그 나름대로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볼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일년에 책을 한권이라도 읽느냐 하면 모두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떤 국회의원은 “나는 읽고 있소!”하고 나설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담한다. 그 대답이란 것이 아마도 장사로 크게 돈을 번 사람의 자서전 아니면 정치로 입신양명(?) 한 사람 이야기 정도일 것이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하여 의사 전달은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 모두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정치 철학을 가질 수 있는 책이나 하다 못해 문학 작품이라도 읽으라 권하면 어떨까? 그 놈의 구호만 외치는 데모는 이제 그만 하라고 하면서 말이다. 수준 높은 유권자가 있으면 수준 있고 철학을 가진 국회의원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이렇게 정치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책 좀 읽으세요. 함량이 잔뜩 들어있는 책 말입니다.”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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