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지내며, 또 연말연시를 맞으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노던블러바드 도로상에서, 핍스애비뉴의 군중 속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 속에서 어디서나 사람들과 마주친다.
이러한 무리 속에 총기난사범, 묻지마폭행범, 날치기 등이 있을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리부터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제 갈길이 바쁜 순진무구한 표정들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친절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짓고 인사하는 것은 몸에 밴 습관이고 문화이다.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으면 다정하게, 열심히 가르쳐주기도 한다. 친절함과 예의, 투철한 시민의식은 미국의 원천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들어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지난 11월 7일 뉴욕과 뉴저지 본선거날, 출근하기 전에 지역투표소에 갔는데 신분증을 꺼내느라고 가방에서 뭔가가 떨어진 것을 몰랐다. 젊은 남성 자원봉사자가 우표 한 장을 주워서는 기표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기다리고 섰다가 건네주었다.
저도 웃고 나도 웃고, 주위 선거참관인들도 모두 웃었다. 사실 이게 웃을 일인가. 그럼에도 모두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아침을 상쾌하게 맞았다.
주말이면 롱아일랜드 익스프레스 웨이를 타고 멀리 갈 일이 자주 있다. 495 Hov(High Occupancy Vehicle) 차선은 트래픽을 피해 달려갈 수 있는 차선으로 운전사 포함 2인 이상이 이용해야 한다. 혼자 타고 이 차선을 달리면 법에 위반된다. 그런데 그 라인이 텅 비어있어도 혼자서 배짱 좋게 이 라인을 이용하는 미국인은 없다. 의외로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얼마 전에는, 브로드웨이 역에서 맨하탄 방향 전철을 탔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당황해서 사양했지만 결국은 앉게 되었다. 미국인이라고 다 착한 사람이거나 친절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같은 이민자로써 양보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서로 도우며 살고자 한다.
추수감사절을 지내면서 초창기 이민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1620년 영국 플리머스 항구에서 메이플라호를 탄 초기 이민자들은, 30여 명의 청교도를 포함 102명(남성 74명, 여성 28명)이었다. 66일간의 길고 긴 항해 후 11월16일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 인근 프로빈스타운 해안에 상륙했다.
항해에 지쳐 굶주리고 병든 이들을 발견한 플리머스 원주민 왐파노아그 부족은 이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첫 겨울은 얼마나 혹독했던지 추위와 감기, 폐렴 등의 질병으로 초기 이민자의 반이 죽었다. 봄이 오자 왐파노아그 부족은 옥수수 씨앗을 나눠주고 농사짓는 법, 고기잡이법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다른 부족으로부터 생명도 지켜주었다.
1621년 첫 추수를 한 그들은 얼마나 감동했을까. 신에게 감사하고 신세진 원주민들을 초청하여 3일간 잔치를 열었다. 이 장면을 그린 대형 그림이 맨하탄 자연사박물관 1층에 걸려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항해로 정착민이 늘고 원주민의 도움이 필요없어지면서 우정이 약화되고 상호 불신감이 생겼다. 19세기 들어 원주민 침탈, 강제이주 등등으로 원주민 수난의 역사도 본격화되었다. 1970년에 와서야 왐파노아그족 활동가인 프랭크 제임스의 노력으로 추모의 날이 제정된 바 있다.
미국의 건국이념은 근면 절약·개척의 청교도 정신과 실용주의가 기틀이 되었고 감사와 나눔의 정신은 이어져 오고 있다.
추수감사절 이후 블랙 프라이데이, 사이버 먼데이 등 일년동안 가장 할인폭이 큰 세일 샤핑에만 정신이 팔려서는 안되겠다. 초기 원주민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후일의 이민자들이 없고 오늘의 부강한 미국도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감사와 나눔의 정신에 반성하는 마음이 더해져야 한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신앙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있는 이민자의 나라, 대부분의 미국인은 친절하다는데 미국의 가치가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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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