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부 지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MIT, 조지타운, 컬럼비아, NYU, 미시건, 럿거스, 세인트존스, 롱아일랜드, 퀸즈 등등 웬만한 대학은 다 가보았다. 가족과 친지의 오리엔테이션, 기숙사 오픈하우스, 졸업식 등등으로 방문하면서 마주치는 젊은이들의 싱그런 미소가 늘 좋았다. 학문의 자유와 낭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어떤 행동을 하든, 무엇을 걸치든 예쁘고 빛나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지내면서 침체된 경기 속에 ‘캠퍼스에 무슨 낭만이요? 그냥, 온라인 강의가 편해요.’ 하면서 비디오게임과 채팅 등 SNS에 몰입되어있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에 전쟁이 터져버렸다.
이 전쟁은 다인종 다문화가 장점인 뉴욕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최근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역사를 2시간 동안 폐쇄시켰고 캐시 호쿨 뉴욕 주지사는 급증하는 증오범죄와 인종차별 범죄 예방을 위한 7,500만 달러 지원안을 발표했다.
전세계로 확산된 시위는 미국 대학가까지 흔들리게 하고 있다. 지난달 7일에는 세계 최고명문 하버드대에서 “모든 폭력사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이스라엘 정권에 있다.”고 학생단체 30여 곳이 비난하자 며칠 후 보스턴 시내에 대형전광판이 등장했다. ‘하버드대의 대표적 유대인 혐오자들’ 문구와 함께 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일부 기업은 이들에게 채용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히자 취업전선이 걱정된 학생모임 중 최소 5개 이상이 지지를 철회하는 일도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인명 손실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뉴욕대 로스쿨 학생회장은 취직이 결정된 로펌의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컬럼비아 도서관 앞에서는 이스라엘 지지 전단을 배부하던 학생이 폭행을 당해 외부인의 캠퍼스 출입이 통제되었고 맨해튼 쿠퍼 유니온 대학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뉴욕시 쿠퍼 유니온 칼리지의 유대인 학생들은 안전을 위해 도서관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반이스라엘 시위자들의 대규모 군중이 있습니다. 미국 캠퍼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하는 문자가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반이스라엘 시위대가 들이닥치자 유대계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피신해 문을 잠그고 불안감에 떨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학가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이스라엘 지지파와 팔레스타인 지자파간에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또 대학 재정의 반을 담당하는 동문들의 기부가 중단되고 있다. 유대인이거나 친이스라엘 고액 기부자들이 대학이 하마스를 비판하지 않거나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부금을 끓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펜실베니아대에서는 총장과 이사장 해임 압박마저 가하고 있다.
중동전쟁의 불똥이 대학가까지 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과거 베트남 전쟁과 냉전의 확대에 대학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64년이후 대학 캠퍼스에서 반전 운동이 시작되어 평화, 사랑과 자유를 강조했던 히피 문화가 퍼졌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서머 오브 러브’ 에서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새로운 사회체험을 위해 모였고 LSD와 마리화나 같은 환각제를 사용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1968년 우드스탁 페스티벌도 열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든 개인의 자유지만 나와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해치거나 압박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다른 학생들의 학업권을 방해할 수 없고 그 어떤 단체도 대학을 대변할 수 없다.
대학은 독립되고 성숙한 인격자가 되도록 권장하는 배움터이자 종교, 빈부, 인종을 떠나 친구를 사귀며 자신의 가치관, 흥미, 열정을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곳이다. 지적 능력 향상과 더불어 세상을 넓게 이해하고 사회 진출에 대한 기반을 다지는 곳임에도 불구, 요즘, 인생의 황금기인 젊은이들이 성적 걱정, 진로와 취업 걱정으로 꿈이 없는 시절을 보낼까 걱정된다.
대학은 마지막으로 남은 낭만지대여야 하고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교환되는 성지이어야 한다. 기부자나 강성주의자로부터도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대학은 흔들려서도 안 되고, 흔들지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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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