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카드와 연말연시 축복 메시지가 12월 내내 카톡에 넘쳐흐른다. 하지만 우편으로 오는 재래식 종이카드는, 나이와 반비례하는지, 해가 갈수록 줄어들어 올해는 달랑 4장 받았다. 뜻밖에도 카드의 문구가 한결같이 ‘Merry Christmas’였다. 그 흔한 ‘Happy Holidays’나 ‘Season’s Greeting’이 아니었다. 수십년 이어져온 ‘크리스마스 전쟁’이 드디어 끝난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한국인들이 이념문제를 놓고 좌파와 우파로 갈려 허구한 날 싸우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할러데이’를 놓고 보수계와 진보계가 연말마다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수정헌법의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기독교계와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는 사회단체들이 법정싸움까지 불사하면서 ‘War on Christmas(성탄절 시비논쟁)’이라는 사회용어까지 생겨났다.
이 용어는 보수 언론의 맹주격인 폭스뉴스의 존 깁슨 앵커가 2005년 발간한 책 ‘크리스마스 전쟁: 상상을 초월하는 진보파의 크리스마스 금지 음모’에서 발원했다. 깁슨은 이 책에서 공공장소의 크리스마스트리 설치가 금지되고 학교에서 십계명이 철거되는 세태에 맞서 기독교인들이 실지 회복을 위해 궐기하고 있다며 “가장 자연스러운 싸움터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역설했다.
그에 앞서 역시 폭스뉴스의 막강한 논평가였던 빌 오레일리는 전체 미국인 가정의 90% 이상이 크리스마스를 쇠는 상황에서 대다수 업소들은 연말연시 판촉광고에 크리스마스 아닌 할러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일부 가톨릭학교조차 학생들에게 그렇게 인사하도록 가르친다고 개탄하고 소비자들에게 월마트, 타깃, 시어스, K마트 등 공룡 소매업체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했다.
오래 동안 ‘메리 크리스마스’ 문구를 기피해온 월마트는 2005년 가톨릭 연맹으로부터 불매운동 위협을 받고 납작 엎드렸다. 홈디포는 크리스마스 대신 할러데이, 하누카 등을 썼다가 보수단체인 미국가족협회(AFA)로부터 불매운동 위협을 받고 무릎을 꿇었다. 의류업체인 ‘갭(Gap)’ 역시 여러 가지 절기 명칭을 섞어서 사용했다가 AFA의 2개월 시한부 불매운동 통보에 손을 들었다.
스타벅스도 2015년 화를 자초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 컵을 성탄절 이미지가 전혀 없이 빨강 일색으로 만들었다가 고객들로부터 비난 세례를 받았다. 편가르기의 달인인 도널드 트럼프는 당시 대선 유세에서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부추기며 “내가 당선되면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지난 10월 제2 임기 선거 캠페인 때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얼핏 보면 보수계가 실지 회복에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YouGov가 2022년 성탄절 직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6%만 크리스마스 전쟁이 끝났다고 말했다. 반면에 민주당원 61%, 공화당원 33%, 무소속 47%는 전쟁이 계속 중이라고 했다. 전체 응답자의 86%는 어떤 형태로든 가족이나 친지들과 크리스마스 명절을 즐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피 할러데이”라고 말한다고 크리스마스가 없어지지 않는다. 2000여년전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축제지만 12월25일이 그의 정확한 생일도 아니다. 로마의 새터네일리아, 게르만족의 율(Yule) 등 토속 동지명절이 섞였고, 상업주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세속화됐다. 매사추세츠에 들어온 미국의 건국조상 청교도들은 순수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며 크리스마스를 20여년간 금지했었다.
크리스마스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하던 전투도 멈추게 한다. 1차 세계대전 때 서로 총질하던 독일군과 영국군 병사들이 1914년 12월24일 양쪽 진지 중간지대에서 얼싸안고 춤추며 잠시나마 평화를 만끽했다. 크리스마스는 평화와 기쁨과 소망의 축제이다. 예수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성탄절 인사말을 놓고 싸우는 세태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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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