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이들 천국이란 말은 있어도 노인네 왕국이란 말은 못 들어봤는데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직은 팔순 할아버지들이 대를 잇는다. 정치를 도제(견습)처럼 하다가 단임 대통령의 불명예를 안고 물러난 도널드 트럼프 45대 대통령이 4년 더 늙어 47대 대통령으로 컴백한다. 그가 퇴임할 때는 82세가 돼 조 바이든 현 대통령보다 한 살 더 늙은 역대 최고령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백악관은 처음부터 어르신 독무대였다. 조지 워싱턴부터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이슨, 제임스 먼로 등 5대까지 모두 백악관에서 65세를 넘겼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70세였고 앤드류 잭슨, 윌리엄 해리슨, 제임스 부캐넌, 해리 트루먼, 조지 W. 부시 등이 칠순 문턱까지 갔다. 지미 카터는 56세에 퇴임했지만 올해 100세가 돼 최고령 (생존) 대통령으로 추앙받는다.
로널드 레이건은 퇴임 때 나이가 16일 모자라는 78세였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 기록 보유자였다. 그가 1981년 40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칠순 나이가 이슈가 됐었다. 레이건의 퇴임 나이에 두 번째 임기에 당선된 트럼프도 바이든과 함께 고령이 문제 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의 롤모델인 레이건처럼 험난한 캠페인 고갯길을 청년 같은 체력으로 두 차례나 거뜬히 완주했다.
레이건과 트럼프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로널드와 도널드라는 이름부터 닮았다. 각각 ‘결정의 통치자,’ ‘세계의 통치자’라는 뜻을 담았다. 둘 다 인생 후반에 정계에 발을 디딘 정치 문외한이었다. 정치입문 전에 레이건은 영화배우로, 트럼프는 ‘어프렌티스’(도제) 등 TV쇼의 사회자로 얼굴을 알렸다. 톱스타급은 못되지만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 두 사람의 별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들 모두 “저런 자가 무슨 대통령 깜이냐”는 조롱을 들었고 연예인 시절처럼 인기몰이에 급급할 것이라는 눈총을 받았다. 무능한 민주당 현직 라이벌을 덕본 행운도 같다. 땅콩 농부 카터는 카우보이 레이건에 속절없이 대패했고, 바이든은 트럼프와의 공개토론에서 죽을 쑨 후 후보 자리에서 밀려났다. 트럼프는 레이건보다 운이 더 좋아서 상대방 후보가 두 번 모두 여성이었다.
의지의 반공주의자인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레이건은 할리웃 배우노조 회장 때 ‘빨갱이’ 배우 척결에 앞장섰다. 트럼프는 북한의 최고영도자와 회담을 가진 첫 미국 대통령이다. 그러나 성적은 달랐다. 레이건은 베를린 장벽철거와 구소련 붕괴에 크게 공헌했지만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역사적 판문점 회담에서 북핵문제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그냥 ‘리얼리티 쇼’로 끝냈다.
두 사람 모두 연방정부 이민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 정책방향은 정반대다. 레이건은 1986년 ‘이민개혁 조정법’을 통해 불법이민자 300여만명을 사면해준 반면 트럼프는 첫 임기에 취임하자마자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았고 이슬람국가 여행객들의 미국 방문을 금지시켰다. 두 번째 임기도 시작하자마자 불법체류자를 추방시키겠다며 취임하기도 전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암살위기를 모면한 것도 공통점이다. 레이건은 중상, 트럼프는 ‘반창고’ 수준의 경상이라눈 점이 다르다. 공화당 대통령이지만 골수 공화당원이 아니었다는 것도 같다. 레이건은 열혈 민주당원이었다가 50세 이후 공화당으로 바꿨다. 트럼프는 1987년 공화당에 입당했다가 1999년 개혁당, 2001년 민주당, 2009년 공화당을 전전했고, 2011년 탈당했다가 2012년 공화당으로 복귀했다.
레이건은 이혼한 첫 대통령이고 트럼프는 세 번 장가간 첫 대통령이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 트럼프는 ‘거짓말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원래 레이건의 것이었다. 그가 모든 일을 레이건만 따라하면 바이든보다는 낫다는 평을 들을 터이다. 하지만 레이건처럼 치매에 걸리는 건 피해야 한다. 깜빡깜빡하는 증상이 위태롭다.
<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