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셜시큐리티도 머스크 눈치 보나?

2025-02-20 (목) 12:00:00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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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희한한 기자회견 장면을 봤다. 백악관 오벌 룸 책상에 트럼프가 근엄한 얼굴로 앉아 있는 데 바로 옆에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쓴 엘론 머스크가 4살 난 아들을 무동 태우고 연방정부의 몸집을 줄여야 할 필요성을 기자들에게 빙글거리며 강조했다. 그가 정부효율부(DOGE) 장관으로 임명 된 후 첫 백악관 행차였다.

집에서 잘 놀았을 애를 굳이 대통령집무실 기자회견에 데려와 무동태운 속내는 빤하다. 이미지 개선이다. 그는 연방정부 기구축소를 위해 트럼프가 신설한 DOGE의 초대장관으로 발탁돼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우쭐대면서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백악관 특별직원’이라는 별칭도, “국민은 그를 선출하지 않았다”는 배척 슬로건도 등장했다.

머스크는 그날 연방 공무원의 직무태만 예를 들면서 “150살 먹은 사람이 소셜시큐리티를 받는다”고 주장하고 “그런 장수노인이 왜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느냐”고 비아냥했다. 아무런 구체적 증빙자료 없이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지만 나는 뜨끔했다. 세계최고 갑부인 머스크가 이제 트럼프를 등에 업고 소셜시큐리티 연금을 난도질할까봐 겁났다.


현재 소셜시큐리티에 목을 매는 사람은 6,700만여 명이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1인당 월 수령액이 평균 1,706달러(2023년 9월 기준)였고, 연방정부가 소셜시큐리티 연금으로 지출한 총액은 1.244조달러(2022년)로 그해 미국 GDP의 5.2%를 차지했다. 머스크에겐 우리네 소셜시큐리티 연금이 껌 값 정도로 보이겠지만 서민들에겐 생명 줄이다.

소셜시큐리티의 공식 명칭은 ‘노령, 유족, 장애자 보험(OASDI)’이다. 미국인 전체 직장인의 94%가 커버되고 보험료는 매월 봉급에서 국세청(IRS)에 자동이체 된다. 전체 미국인 6명 중 1명이 소셜시큐리티 수혜대상인 65세 이상이다. 100년 전엔 20명 중 1명꼴이었다. 한 세기 동안 거의 1,000% 늘었고 미국 인구증가율보다 5배나 빨리 앞질렀다.

당국은 2080년까지 미국 직장인의 은퇴자 부양율(65세 이상 인구를 20~64세 인구로 나눈 비율)이 4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현역 직장인 10명이 은퇴자 4명을 먹여 살려야한다는 얘기다. 2005년 비율은 그 절반이었다. 더구나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현재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은 90세, 10명 중 1명은 95세를 넘겨 살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소셜시큐리티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다. 소셜시큐리티 관리청(SSA)은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획기적 조치가 빠른 시일 안에 취해지지 않으면 OASDI 기금이 2034년 바닥나고 2035년부터는 그 해 들어오는 보험료에 정부재원을 보태 기존 수령액의 77% 수준을 지급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외고집 트럼프는 최근 소셜시큐리티에 부과되는 소득세를 폐지해야한다고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그의 포퓰리즘 선거공약 중 하나이다. 세금을 없애면 노인들의 호주머니가 넉넉해져서 소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펄쩍 뛴다. OASDI로 되돌려지는 소셜시큐리티 세금을 없애면 기금이 2년 앞당겨 2032년에 바닥난다는 것이다.

지난주 오벌룸 기자회견은 쇼였다. TV쇼 호스트였던 트럼프가 감독한 뉴스쇼에 머스크가 아들을 무동 태우고 나온 코미디였다. 재정확보를 위한 부서 축소와 공무원 해고는 누구나 할 줄 안다. 돈 버는 재주가 출중한 두 사람이 그날 소셜시큐리티 기금확충을 위한 신박한 전략을 밝혔더라면 6,700만 노인들의 표는 따 놓은 당상이었을 터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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