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라진 구질서에 대한 향수감 짙게 배인 대하극

2023-11-10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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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표범’(The Leopard·1963) ★★★★½(5개 만점)

사라진 구질서에 대한 향수감 짙게 배인 대하극

귀족인 화브리지오는 무너지는 구질서의 붕괴를 체념적으로 수용한다.

실제로 귀족이었던 이탈리아의 명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사라진 구질서에 대한 향수감이 짙게 배인 대하 역사극으로 화려하고 풍성한 시각 미(주세페 로투노 촬영)를 뽐내는 작품이다. 1860년대 이탈리아 통일기의 한 귀족의 눈으로 바라보는 구질서와 귀족사회의 붕괴와 신질서의 부상을 그린 영화로 칸 영화제 대상 수상작. 로마와 시실리에서 찍었다. 상영시간 205분.

1860년대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이탈리아를 통일하려는 지도자 가리발디의 군대가 시실리를 침공하면서 팔레르모의 귀족 돈 화브리지오(버트 랭카스터)의 우아하고 조용한 세상을 근저부터 뒤흔들어 놓는다. 현명한 화브리지오는 이제 자신의 세상은 끝나고 탐욕스런 신 부르좌 층인 ‘재칼’들이 귀족 ‘표범’들을 대체할 날이 멀지 않음을 깨닫는다.

화브리지오에게는 가난하나 야심에 찬 조카 탄크레디(알랑 들롱)가 있는데 탄크레디는 기회를 포착, 혁명군에 입대했다가 부상당한다. 화브리지오 가족은 여름을 맞아 별장이 있는 도나후가타로 이동한다. 화브리지오는 자기 딸이 탄크레디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탄크레디의 안정된 미래는 벼락부자로 기회주의자인 도나후가타의 시장의 아름다운 딸인 안젤리카(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국민투표에 의해 이탈리아 통일이 가결된 후 화브리지오는 의회 상원자리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지만 이를 거부한다.


영화의 절정은 서로 사랑하게 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를 신 사회에 알리는 대무도회의 화려한 장면으로 하이 앵글과 롱 샷의 촬영이 황홀무아 지경이다. 그리고 ‘표범’ 화브리지오는 지팡이를 짚고 명상에 잠겨 어두운 거리를 천천히 걸어 사라진다.

강인한 체격과 표정 많은 얼굴을 지닌 랭카스터의 고요하고 위엄 있는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사라져 가는 세상의 쇠락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캔바스에 황혼처럼 채색한 명작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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