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킬러’(The Killer) ★★★½(5개 만점)
▶ 독백식의 내레이션으로 진행, 고뇌·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며 폭력·에너지 넘치는 액션 가미
이름 없는 킬러는 길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자신의 목표물을 기다리며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한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히 효능적인 영화를 만드는 데이빗 핀처(‘세븐’ ‘소셜 네트웍’)가 감독한 말끔히 임무를 수행하는 프로 킬러의 범죄 액션 스릴러로 그래픽 소설이 원작이다. 실존적 킬러 영화로 엄격한 형식미 속에 이름 없는 킬러의 복수의 행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그의 재능과 주인공 킬러로 나오는 마이클 화스벤더의 냉철한 연기가 조화를 이뤄 평범한 통상적인 킬러 영화의 범주를 웃도는 재미있는 작품을 내놓았다.
킬러의 끊임없는 독백식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가차 없는 폭력과 에너지 넘치는 액션과 함께 다분히 위트가 있는 고백록 식의 대사로 인해 무자비하고 급격한 행동을 보다가도 웃음을 짓게 만든다. ‘동정하지 마’ ‘누구도 믿지 마’ 그리고 ‘나는 나야’라고 독백하는 킬러는 살인 교본에 따라 정확히 임무를 수행하는 기계와도 같은 인간으로 냉혹하고 엄격한 살인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하고 또 고뇌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생각하는 킬러다.
챕터 식으로 진행되면서 챕터가 바뀔 때마다 장소와 킬러가 상대하는 인물도 바뀌는 영화는 먼저 파리에서 시작된다. 킬러는 공사 중인 건물의 한 방에서 건너편 고급 아파트에 사는 자신의 목표물이 나타나기를 끈질기게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의 지루함을 요가를 하면서 해결하는 킬러는 귀에 이어버드를 꽂고 음악을 즐긴다. 마침내 목표물이 나타나자 킬러는 총에 부착한 망원렌즈로 목표물을 조준해 사격하나 엉뚱한 사람이 희생된다.
킬러는 급히 건물에서 빠져나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도주한다. 달리면서 총기를 분해해 하수구와 쓰레기차에 던져 처분한다. 그리고 주유소 화장실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팔과 손을 소독제로 깨끗이 씻은 뒤 자기에게 임무를 준 사람을 찾아가 임무 실패를 통보한다. 킬러는 이어 가짜 여권을 사용해 자기 은둔처가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간다. 킬러가 가진 가짜 여권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여권의 이름도 각기 다르다. 그 중 하나는 필릭스 엉거인데 이 이름은 197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코미디 시리즈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킬러가 은둔처에 도착해보니 집은 난장판이 되었고 애인 막달라(소피 샬롯)는 침입자들에 의해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막달라는 자기를 찾아온 킬러에게 남녀 2인조가 범인들이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영화에서 막달라에 대한 인물 묘사가 너무 희박해 킬러가 막달라의 피해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이를 가는 심정에 동감이 가질 않는다.
병원에서 나온 킬러는 자기의 목숨을 노리고 또 막달라를 폭행한 두 남녀와 이들을 고용한 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살인과 폭력이 자행된다. 뉴올리언스와 플로리다와 뉴욕으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킬러의 복수 행각이 이어지는데 킬러의 적으로 핏 불을 키우는 브루트(살라 베이커)와 장시간 벌이는 격투장면이 압권이다. 둘이 온 육체를 동원해 싸우는 광경을 실루엣으로 찍은 촬영이 멋있다. 또 하나 삼빡하게 멋있고 흥미 있는 것은 킬러의 라이벌인 엑스퍼트(틸다 스윈튼)와 킬러가 식당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 장면.
광대뼈가 두드러진 창백하고 차가운 얼굴과 죽은 사람의 눈과도 같이 메마른 눈을 한 화스벤더가 냉정한 킬러의 연기를 나무랄 데 없이 잘한다. 음악과 촬영도 좋다. 관람등급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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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