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과 로알드 달이 만났다… 골라 맛보는 4가지 별미
2023-10-20 (금)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단편영화‘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투시력을 얻기 위해 노력한 영국인 헨리 슈거의 사연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묻는다. [넷플릭스 제공]
스크린에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한 장면만 봐도 그의 영화인지 눈치챌 수 있다. 강박에 가까운 좌우대칭 구도, 파스텔 같은 색감, 현실과 환상이 구분되지 않은 공간과 이야기는 웨스 앤더스 감독의 인장이다. 이 개성 넘치는 감독이 아동소설가로 유명한 로알드 달(1916~1990)의 기괴한 단편소설과 만나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까. 최근 공개된 단편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독’ ‘쥐잡이 사내’는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네 편 중 가장 길고(37분)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다. 액자소설 같은 구성을 갖춘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영국인 헨리 슈거(베네딕트 컴버배치)다. 부유한 슈거는 인도에서 있었던 기이한 일에 대한 기록을 우연히 발견한다. 수년간의 수련으로 투시력을 얻은 한 서커스 단원에 대한 내용이다. 서커스 단원의 이야기에 슈거의 사연이 포개진다.
슈거는 기록을 활용해 투시력을 익힌다. 카지노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다. 그는 과연 투시력을 얻게 될까. 투시력을 얻게 된 후 그는 쉽게 돈을 벌게 될까. 물음표에 물음표가 이어지면서 재미가 배가되고 종국엔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원작 소설은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하거나 상상이 날갯짓해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네 편 모두 이야기꾼 달의 재능이 빛난다. 앤더슨 감독의 표현력이 달의 기발한 생각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영화들은 연극처럼 꾸며진다. 등장인물들은 무대에서 활용될 만한 장치들을 통해 공간 이동을 하고는 한다.
등장인물이 대사와 더불어 지문을 함께 읽기도 한다. 연극적이긴 하나 전통적인 연극과 거리를 두는 셈이다. 자신만의 기법을 완강히 고수하며 관객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가는 스타일리스트 앤더슨답다. 관객은 황홀하고도 신기한 달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앤더슨의 독창적인 표현력에 매혹된다. 이보다 좋을 수 없을 조합이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씁쓸하거나 섬뜩한 내용이다. ‘백조’는 동네불량배들의 괴롭힘 때문에 백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사연을 다룬다. ‘쥐잡이 사내’는 짐승보다 더 잔혹하고 악랄한 인간의 면모를 들춘다. ‘독’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다 오만불손한 인종주의를 드러내고 마는 한 사내의 맨 얼굴을 보여준다.
세 편으로 외면하고 싶은 인간본성과 마주하고 나면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누구나 앤더슨의 표현 방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오싹하고도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그림책처럼 묘사해내는 앤더슨의 연출력이 낯선 미감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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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