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아픔을 그윽하고 아름답게 그린 비련 영화
2023-10-13 (금)
박흥진 편집위원
▶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모르는 여인의 편지’(Letter from an Unknown Woman·1948) ★★★★½(5개 만점)
모르는여인 리사가 잠시 슈테판의 사랑을 받으면서 희열에 젖어있다.
독일 감독 막스 오펄스가 만든 이 흑백영화는 짝사랑의 아픔을 그윽하고도 아름답게 그린 사무치는 작품으로 원작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즈바이크의 소설. 여인의 심리를 지극히 섬세하고 꿰뚫어 보듯이 그린 비련영화의 극치라고 하겠다.
주인공 리사(조운 폰테인)가 죽음의 침상에서 짧은 생을 모두 바쳐 사랑한 남자 슈테판(루이 주르단)에게 보낸 편지를 슈테판이 읽으면서 회상 식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서정적인 무드와 빛과 그림자를 뚜렷이 대비시킨 촬영 그리고 민감하면서도 굴곡 있는 드라마 구성 등으로 인해 보는 사람의 가슴을 그리움과 향수에 젖게 하면서 아울러 로맨스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콘서트 피아니스트인 슈테판이 치는 리스트의 피아노곡 ‘한숨’의 변주 테마가 영화 내내 흐르며 작품의 비극미를 더해준다.
1885년 비엔나. 14세의 꿈 많은 소녀 리사는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이사 온 멋쟁이 난봉꾼 피아니스트 슈테판을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리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해서도 밤마다 길 건너에서 님의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그를 사모한다. 슈테판은 어느 날 길에서 만난 리사와 하룻밤을 지내 리사는 슈테판의 아기까지 갖게 되나 슈테판은 리사를 떠난다.
리사는 후에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나서도 슈테판을 못 잊어 그를 찾아가나 슈테판이 자기를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직도 자기를 놀이 상대로 생각하는데 상심, 그의 곁을 떠난다. 병상에 누운 리사는 슈테판에게 모르는 여인의 편지를 쓰고 숨진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사랑했고 고통과 희망 없는 그리움에 아팠습니다. 나는 당신을 언제나 사랑했듯이 지금도 사랑합니다.” 리사의 나이 29세로 15년간의 사랑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이 나고 만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영화에서 특히 잊지 못할 것은 폰테인의 얼굴. 그리움에 무너질 듯 하면서도 갈망하는 표정을 지닌 얼굴이 그렇게 아름답고 애처로울 수가 없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감상적이라고 힐난했으나 이 영화는 깊이가 있고 또 진정한 예술적 보편성을 지닌 감동적인 로맨스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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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