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인극 스타일의 냉정하고 긴장감 가득한 로맨틱 심리 스릴러’

2023-09-2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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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페어 플레이’(Fair Play) ★★★★½ (5개 만점)

▶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연인에서 한사람 만 승진하며 관계가 붕괴
▶ 남녀간의 대결을 흥미롭게 그려

‘2인극 스타일의 냉정하고 긴장감 가득한 로맨틱 심리 스릴러’

연인 사이인 루크(왼쪽)와 에밀리의 관계는 에밀리가 루크롤 제치고 승진하면서 악화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뜨거운 섹스가 있는 로맨틱 심리 스릴러로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연인 관계인 두 사람 중 하나가 승진하자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붕괴하면서 벌어지는 2인극 스타일의 냉정하고 긴장감 가득한 드라마다. 돈이 전부인 현대 사회의 재정회사 내 치열하고 살벌한 역학 관계와 성적 차별 그리고 남성의 구린내 나는 근성과 함께 남녀 간 성의 대결을 가차 없이 파헤친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이 영화로 감독에 데뷔한 여류 클로이 도몬트(각본 겸)의 빈 틈 없는 각본과 말끔하고 단단한 연출이 돋보이는데 두 연인의 관계가 계속해 붕괴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 관계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가 궁금해 보는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영화는 뉴욕의 투자회사에 근무하는 루크(앨든 에렌라익)의 형의 결혼파티 장면으로 시작된다. 루크의 동거 연인으로 루크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에밀리(피비 다이네보)도 파티에 참석했는데 둘 다 야심만만한 출세 지향적인 사람들. 정열적인 섹스를 즐기는 루크와 에밀리는 파티장의 화장실에 들어가 섹스를 즐기다가 에밀리의 옷에 피가 묻은 것을 발견한다. 여성 생리의 피인 데 코믹하기까지 한 이 장면의 피는 후에 올 두 사람의 관계악화에서 흘려지는 피를 예고한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루크가 가져온 약혼반지를 들고 에밀리에게 구혼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에밀리.

두 사람은 동거 연인이면서도 말끔히 차려 입고 새벽같이 출근할 때는 따로 교통편을 이용한다. 회사 사칙이 동료사원간의 로맨스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무표정하고 냉정한 눈을 지닌 회사의 사장 캠벨(에디 마산)에 의해 직장 내 한 간부사원이 해고되자 승진을 고대하던 루크가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데 에밀리도 루크가 빈 간부 자리를 루크가 차지할 것이라는 사내 소문을 듣고 당연히 루크의 승진을 기대한다.


그런데 어느 날 꼭두새벽 에밀리가 캠벨의 호출을 받고 바에 찾아간다. 캠벨이 에밀리에게 빈 간부자리가 네 것이라고 통보한다. 아파트에 돌아온 침울한 표정의 에밀리를 보고 루크가 “그 놈이 너를 육체적으로 건드렸냐”고 묻는다. 이렇게 직장 내 여성의 위치는 아직까지도 남자 간부의 성적 노리개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에 에밀리는 “노”라면서 빈 상사 자리에 자기가 앉게 되었다고 말한다. 미안한 표정의 에밀리에게 “축하 한다”고 말하는 루크의 눈과 얼굴 표정에서 실망과 질시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루크는 빈 상사의 자리가 당연히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밀리는 앞으로 자기가 루크의 승진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다짐하나 루크는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에밀리는 루크의 조언대로 따랐다가 회사에 3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히기까지 한다. 에밀리의 승진으로 인해 좌절감에 빠진 루크는 에밀리의 승진을 에밀리가 자기의 몸을 팔아 성취했다고 까지 믿으면서 직장 내에서 에밀리를 평가절하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남성의 냄새나는 근성이 서서히 노출되고 악화하면서 에밀리와 루크의 감정적 관계는 물론이요 성적 관계마저 퇴화를 하게 된다.

둘 사이의 말싸움이 서서히 강도를 높이다가 급기야 폭력 행위로까지 악화하는데 회사에서도 인정 못 받고 약혼녀에게 자기 차지라고 믿었던 승진을 빼앗긴 루크는 점점 더 추한 인간으로 몰락한다. 루크는 에밀리의 어머니가 딸에게 묻지도 않고 마련한 약혼 파티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고 회사의 사장실에 들어가 난동을 부린다. 이런 루크를 앞에 놓고 에밀리가 날카롭고 의미심장한 긴 독백을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에렌라익과 다이네보의 화학작용이 절묘한데 모범인간 같던 루크의 인간성 몰락의 과정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에렌라익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를 혼자서 메고 가다시피 하는 것은 다이네보의 연기다. 취약해 보이면서도 강렬하고 강인하게 내연하는 연기가 눈부시다. 상감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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