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느 동네에나 꼭 한두 명씩 있었다. 쎄무 워커(비로드 천 군화)에 바지 끝에는 쇠구슬들을 처렁처렁 하게 달고 삐딱한 팔각모와 빨간 명찰을 단 해병대, 멀쩡했던 사람도 거기만 갔다 하면 험악할 대로 인상이 굳어진다고 해서 스스로를 개병대((?)라고도 불렀다. 막걸리를 했는지 벌건 얼굴에 정차한 버스 앞에 드러누운가 하면 길가는 사람 붙들고 시비해도 지서의 순경들도 함부로 못했다. 어쩌다 장터에서 두세 명의 해병대가 만나기라도 하면,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띄우고 ~~, 오늘은 어디 가서 땡깡를 놓고, 내일은 어디 가서 신세를 지나 우리는 해병대 ROKMC” , 목청껏 ‘곤조가’를 부르면 온 장터가 쩌렁쩌렁하다. 군대에서는 공식적인 군가(軍歌)보다는 사가(私歌)라고 해서 훈련 시에는 이런 사가를 더 많이 부른다.
남자들만의 공간이어서 가사들이 민망할 정도로 질펀하다. ‘해병대 곤조가’는 사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노래다. 곤조는 일본 말이다. 근성(根性)이나 끈기, 깡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맞다. 사내 남자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해병 대원을 나무라기보다는 사회가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고 격려했던 분위기였다. 그만큼 군대 가서 고생하고 힘들었을 것이니 휴가 때나 맘껏 즐기라는 국민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공중침투가 특전사라면 해병대는 해상 상륙작전부대다. 전쟁이 나면 최전선 너머 적진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야 하는 빡센 부대들이다. 서로 독특한 군대 문화가 있다. 그래서 서로를 인정해 주고 상존(相尊) 하고 서로 간에는 피한다. 상명하복이 뚜렷하고 독특한 기수문화(期數文化)를 유지한다. 그런 해병대가 요즈음 깊은 적막에 빠져있다.
그 중심인물로 사단장과 상병 그리고 대령 세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엉뚱한 사람들이 거기에 끼어들었다. 군대는 전쟁 때문에 존재한다. 그래서 죽음은 일상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건은 좀 달랐다.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해병 대원이 강물에 빠져 죽었고 그게 사단장의 공명심 때문이었다는 것이 국민들의 생각이다.
군의 특성상 사망사고를 군 내부에서는 단순 사망으로 개죽음 처리해 온 수많은 전력(前歷) 때문에 그런 수사는 민간이 객관적으로 수사하도록 되어있다(2022. 7월). 그 수사 책임자인 대령이 해병대 사령관, 국방부 장관의 결재까지 받아서 경북 경찰청에 수사기록을 이첩을 했다. 그 모든 절차가 99% 옳았다. 그런데 이 수사단장인 대령을 느닷없이 ‘집단 항명 수괴제’라는 어마무시한 반역죄로 형사입건하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법과 원칙’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그 사건과는 별개지만 궤(軌)를 같이하는 일이 이번에는 육군 사관학교에서 벌어졌다. 교정에 세운 홍범도 장군의 흉상과 독립투사 5분의 흉상을 옮기겠다고 해서 나라가 발칵 하고 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자리에 백선엽 초대 육참총장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제발 좀 그러지 말자.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1932.4.29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사망한 관동군 사령관 이름이다. 그 일로 동년 12.29 윤봉길 의사는 오사카에서 총살 처형당한다. 그런 시라카와와 똑같은 성과 이름으로 창씨개명하고 ‘항일 조선인은 조선인이 잡자.’고 하는 간도 특설대에 입교한 사람이 백선엽이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손녀는 윤주경 현 국힘당 의원이다. 처음에 이분의 선택이 이상하다고 했는데 요즈음 그분의 심경이 상당히 궁금하다.
정의와 군대가 어떤 때는 부딪칠 때가 있다. 비록 틀리지만 명령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곳이 군대다. 그런데 정의는 군대보다 훨씬 상위 개념이다. 군대는 정의를 위할 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명령에만 복종하면 사병(私兵)이요, 그냥 졸(卒)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단료투천’(簞 投川), 곽거병(霍去病) 장군이 한무제에게 하사받은 술을 강물에 풀어 병사들과 함께 마셨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군대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유용한 리더십의 백미(白眉)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군가(軍歌) 하나에 뭉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게 군대이고 사기(士氣)다. 귀신잡는 해병대를 순식간에 이렇게까지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지금의 해병대는 말없는 현역이나 할말하는 예비역이나 그 어느 때보다도 똘똘 뭉쳐있는 듯하다.
안보가 엄중한 대한민국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싸우는 상대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버렸다. 늦었지만 쪽팔리더라도 바로잡는 게 사기를 올려주는 것이다.
그럴 줄 알면 이 지경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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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