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과학기술 혁신 리더십
2023-09-28 (목)
고광본 서울경제 선임기자
‘세종실록지리지→농사직설→향약집성방→혼천의→자격루→갑인자→앙부일구→측우기→칠정산→훈민정음→철제화포→의방유취→총통등록.’
일본에서 1983년 발간된 ‘과학사기술사사전(홍문당)’에 있는 세종대왕(재위 1418~1450년)의 과학기술 업적 21개 중 주요 내용이다. 당시 연표에 소개된 중국과 일본의 업적은 각각 4개와 1개에 그쳤다. 이 밖에 유럽과 중동을 모두 합쳐도 20개였다. 올해 노벨상은 다음 달 2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만약 15세기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세종은 인문학 기초에 과학기술 문명을 융합한 혁신 리더였다. 당시의 시대정신에 맞춰 농업 생산량을 높이고, 의료에 투자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닦았다.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데도 신경을 썼다. 늘 맹자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생활이 불안정하면 바른 마음이 안됨)을 되뇌었다. 신기전 개발과 같은 국책 연구 과제를 진행할 때는 중간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했다. 출중한 엔지니어(이천·장영실·박자청), 천문역산학자(이순지·정인지·정초·정흠지·김단·김돈·김빈), 의학자(노중례·황자후), 지리학자(정척·변계량·맹사성·권진·윤회·신장)를 두루 등용해 과학기술 강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종이 뿌려놓은 과학기술 혁신 DNA는 그의 사후 50여 년 만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이후 100년도 안 돼 임진왜란이 터지며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는 참화를 겪는다. 정치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 서열에 따른 과학기술 천시 분위기도 적잖게 작용했다. 당시 은이 국제 결제통화였던 상황에서 납 한 근에서 은 두 돈을 분리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을 개발하고도 정작 일본에 기술이 유출된 것도 주요인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국 통일에 이어 임진왜란을 저지른 기반이 된 이와미 은광이 17세기 초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을 제치고 세계 1위로 군림한 게 이 때문이다.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현관 벽에 ‘16세기 외국(조선)에서 들여온 회취법에 의해 시작됐다’고 적혀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또다시 우리의 첨단 도자기 기술을 빼가며 서양과 무역을 활발히 폈다. 우리에게 식민지 전락이라는 뼈아픈 역사로 이어진 배경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를 잘 구축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전쟁의 참화에서 보릿고개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정보화를 달성하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취를 이뤘다. 재작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당당히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 K팝·드라마·영화·푸드 등 한류 바람을 일으키며 국제 위상도 전례 없이 높아졌다. 정말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국격 상승의 원동력 중 하나가 과학기술 투자였다는 것을 망각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기업에 지원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이 25조 9,000억 원대로 올해(31조 700억 원)보다 급감하기 때문이다. R&D 예산 감소는 33년 만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2위의 R&D 예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가 부족하고 일부 R&D 카르텔도 있다는 게 대통령실과 정부의 입장이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사기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칫 과학기술 홀대론으로 비쳐지며 가뜩이나 심화하는 젊은 층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염려도 나온다. 정부 부처·기관 간 높은 칸막이 타파와 대학·출연연의 혁신 자율 생태계 구축이 시대 과제인데 정작 격화소양(隔靴搔痒·신을 신고 가려운 발을 긁음)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우리 경제성장률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에 비해서도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뒤처질 것으로 보이는 위기 상황이라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이 절실하다.
결국 정치가 과학기술을 짓누르거나 국가적인 혁신 생태계 구축에 실패하면 역사적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했는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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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본 서울경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