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이민자들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돌아오는 생일을 제날에 맞추어 할 수 없는 여건에 살고 있다. 가장이나 주부나, 또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으로 생활하는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지역적인 조건은 주거비가 좀 비싼 편이다. 부부가 함께 벌어야 생활할 수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아침 출근시간에는 오분, 십분을 쪼개가며 바쁘게 일터로 갔다가 저녁때나 함께 모여 저녁식사 상머리에서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가볍게 이야기하며 오붓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 시간이 잘해야 한 시간 반 정도,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후 또 다시 이어지는 내일이라는 다른 날을 위하여 잠자리에 들면서 꿀잠을 청한다.
매일처럼 이어지는 일상의 생활이 이렇게 같은 시간이 반복되기에 쏜 화살촉 같이 빨리 지나감을 느끼는 것 같다. 누구나 시간이 빨리 간다고 혼자의 독백이랄까? 푸념이랄까? 그냥들 궁시렁거린다.
이런 생활의 흐름 속에 제 날짜에 생일을 지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모두는 생일 전 주말을 택하여 케익을 자르며 축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집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식구들의 생일이 옹기종기 여름에 유난히 많다. 얼마 전 결혼해서 나가 살고 있는 큰 아들의 생일을 날 잡아 주말에 우리 집에서 하였다. 날도 몹시 더운데 어디로 가느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제철 음식인 시원한 냉면, 불고기에, 김치전, 빛깔 좋은 과일 몇 가지, 상차림은 그래도 근사했다. 오랜만에 작은아이네 식구까지 다 모이니 왁자지껄, 시끌시끌한 게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내 집을 꽉 채웠다.
음식을 먹은 후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둘러앉아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하는데 혼성 합창도 아니고, 이중창도 아니고, 몇 중창인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꼬맹이에 어른들에…. 나 혼자 뒤에서 웃었다. 나이 먹어서 기쁨과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또 웃었다.
그 후, 몇 날이 지난 다음 한낮 기온은 높이 올라가기에 기온이 낮은 아침시간에 나는 자연 위의 나의 무대로 걸어 나갔다. 아침 햇살과 맑은 공기 속에 심취되어 걷다보니 아! 오늘이 아들의 진짜 생일날이었다. 야단법석 떨며 생일잔치 하는 날 선물에 카드에 다 주었지만 오늘이 너의 진짜 생일날이라고, 축하한다고 짧게 문자를 넣었다.
그리고 멋진 카드를 찾아보려는 순간 훨씬 더 멋진 카드를 보내주자는 생각이 스쳤다. 걸어오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 집 앞에 빛이 찬란한 장미꽃 송이들이 보였다. 푸른 잔디밭 위에 어우러진 탐스러운 빨간 장미 꽃송이들! 아침 햇살에 정말 환상이었다. 어느 카드가 이보다 아름답고 훌륭할 수가 있을까!
한 컷을 잘 찍어 아들한테 보냈다. “이 장미꽃 빛깔만큼이나 아들아 너의 진짜 생일날을 축하한단다”하고 꼭 눌렀다. 일초도 안 걸린 그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도 기분이 상쾌하던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는데 아들한테서 답신이 왔다. “멋진 생일카드 잘 받았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기분 좋은 여름날 아침, 아들의 진짜 생일날, 햇볕은 벌써 뜨거운 열기를 쏟아내는데 나는 왠지 따뜻하다. 그냥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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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 베데스다,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