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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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2023-09-06 (수) 박보명 / 매나세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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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말에 숨어 있는 뜻을 나중에서야 깨닫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속에 스스로 경험하고 같은 처지의 일을 실제로 당해 보았을 때 비로소 얻는 산 지혜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생각이 깊거나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돌아 볼 지혜가 있지만 생각이 좀 짧은 사람은 화부터 돋우며 분을 새기지 못하고 우울해 하는 것 아닐까? 흔히들 ‘그런 일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는 말을 할 때 그 뜻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더니 내가 막상 그런 처지에 놓였을 때는 ‘아! 맞아’하고 통감하는 것이 아니랴! 그 부모의 그 자식이지 ‘부모와는 영 딴 판이네!’ 이런 말들은 자주 듣는 말이면서도 무서운 말인 동시에 뜻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당신은 사람이 사는 동안 남의 입에 자주 오르 내리는 말 중에 존경하는 대상으로 아니면, 말거리 험담에 대상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자식이 잘 하면 부모가 칭찬을 받으며 마음이 흐뭇하고 반대로 잘못하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거나 귀를 막아 못 들은 척 하는 것은 나만의 노파심일까 아니면 공연한 생각일까. 자신을 돌아 볼 여유없이 막가는 세상에 무슨 도덕 선생 같은 소리인가 할지 모르지만 누가 말했듯이 ‘지금은 낳은 부모는 있지만 기른 부모는 없고, 모두가 선생인데 후생 없는 세상’이란 말이 그냥 들리지 않네요.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자식을 두둔한답시고 ‘자식은 겉을 낳지 속을 낳는가!' 라는 변명은 듣는 귀를 슬프게 하는 대사 같아 씁쓸한 것도 나만의 노망이었으면 한다. 예전에 효심은 그만 두고라도 부모님이 좋아 하시던 음식이나 또는 필요하실 것이라는가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부모님이 생각난다면 이미 돌아가신 후에 제사상에 올리는 어리석음은 식상한 일이 아닐까 모를 일이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온갖 원하는 것은 아끼지 않고 들어 주면서 치사랑은 눈꼽만큼도 안한다면 흐르는 물길을 두 손으로 막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세상에 어린 아이들은 장난감과 게임기 그리고 흔한 먹거리에 넘쳐 음식이 귀한 줄 모르고 옷은 유행에 뒤질세라 제철에 따라 가느랴 옷장마다 차고 넘치는데 부모님에 대한 배려는 노인네가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무슨 약을 드시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생각이 없다면 그걸 자식이라 할 수 있을까 정말 겉만 낳은 꼴이 아닐까 싶다. ‘늙어가는 것’ 이란 글 중에 '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이 없는 사람을 부러워 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 한다'는 모순적인 글을 보았다.

그건 자식 나름이란 말일게다. 여러 자식 가운데 부모에게 잘 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짐이 되고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자식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사가 아니랴! 어느 현명한 유대 랍비가 제자에게 ‘무엇이 행복입니까?’ 하고 질문에 답하기를 첫째는 자족하는 것이고 (만족할 줄 아는 일) 둘째는 감사(감사할 줄 아는 일) 셋째는 여유( 항상 웃을 줄 아는 여유)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 그렇게 사는거야 천지도 명암도 그대로 한 점 구름 왔다 가는 무상이여!’ 걸 한 점 구름이라는 글귀를 써 붙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읽으며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를 받는다.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부러워 하거나 시기하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이라면 그것을 달관한 사람만이 자족과 감사와 웃는 여유가 있지 않을까 중얼거려 본다

<박보명 / 매나세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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