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꿈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삶을, 아니 어떻게 하면 성공적, 특히 사회적으로 인정 내지 존경받는 삶을 성취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부 지각 있는 젊은이들이나 그렇지 대부분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현 위치, 아니 노년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한다.
지각 있는 대표적 사례는 아마도 사제(성직자)의 길을 택한 분들이 아닐까. 혈기왕성하던 젊음을 포기(?)하고 양떼들을 돌보기 위한 목자의 길을 택한 그 분들은 나이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아니 된다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필자도 그 축에 속할지 모르나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어느 분은 묘비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네!”라고 새겨달라고 했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음을 안다.
일부이긴 하나 용의주도하게 삶을 계획하여 얄밉도록 세상에 잘 적응해 편한 삶을, 더욱이 노년(가족에게는 최고의 선물이겠으나 밖에선 손가락질 당하는)을 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쁘게 이야기 하면 늘 꽃길만 걸으려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닐까. 생각과 행동에 늘 주판알을 굴리려는 사람들 말이다. 부지기수다.
반면 대의를 위해 자신은 물론 그로 인해 가족의 안위는 한참 우선순위에서 늘 뒷전에 밀리는 대표적인 예는 예나 지금이나 공익을 생명처럼 여기는 분들이 아니겠는가. 비록 수적으론 미미하지만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로 세상이 이만큼만이라도 유지 발전 되어 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한마디로 요지경이다. 자신의 궁극적 포부가 뭐기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는 상대도 아니 되는 적국에 맞서 자국의 국민들,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려 드는가? 물론 침공한 적국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 도발의 구실을 허용하지 않는 슬기가 있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과 원망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죽은 생명은 말 할 것도 없지만 살았더라도 불구의 몸이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일부에선 5만 명 이상 육박한다고도 한다), 아니 단 한명이라도 애국이라는 호도된 감언이설에 희생자가 나와서는 아니 되는 것 아닌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책무를 저버린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지도자가 아니다.
형편은 우리 조국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국가의 장래에 대한 비전도, 계획도 보이지 않고 해묵은 이념논쟁, 책임회피, 먼지털기식 수사, 그것도 모자라 조작수사, 사건의 은폐, 온갖 비정상이 정상을 뒤엎는 난장판, 바로 이것이어서 국가 장래가 밝지만 못해 안타깝다. 한마디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국이다.
국가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희생하신 애국영령들을 본받질 못할망정 애국지사들을 욕보이려는 망동들을 즉각 멈추기를 엄중히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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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