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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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2023-08-23 (수)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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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비바람이 창문을 무섭게 때리고 지나갔다. 해마다 여름 폭풍은 찾아오지만 올해는 급변하는 지구의 환경으로 인해 전 세계에 이상변화가 오고 있어서 불안감이 든다. 홍수, 태풍, 토네이도가 자주 오고 열대지방에 우박이 쏟아지며 남극지방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등 익숙했던 계절의 기후와 환경에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후손들을 위해 영원히 잘 지켜야 할 대자연에 핵무기, 수소폭탄등으로 인류는 전쟁을 하고 무자비한 살생을 하며 독가스를 품어내는 등 환경파괴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분께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건전한 마음과 양심으로 우리가 사는 지구를 깨끗이 보존하고 환경정화를 위해 서로 노력해야만 한다.
이른 아침 동네길은 나뭇잎과 부서진 가지들이 뒹굴었지만 그래도 언제 폭풍이 지나갔냐는 듯 하늘은 맑고 파래서 더욱 신선하게 보이고 군데군데 젖은 아스팔트 옆 잔디에는 파릇파릇 촉촉함이 서리고 있다.

집동네를 지나면 늘 가는 산책길이 있다. 차가 겨우 서로를 지켜보며 왕래할 정도의 폭을 갖거나 조금 넓게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인데 15마일 속도로 천천히 가라는 노란 싸인이 계속 붙은 이 길은 산을 깎아서 만든 듯 굽이굽이 S자 모양으로 일 마일이 넘게 이어진다. 다니는 차가 많지않아 계절의 변화를 맛보며 우리는 이 길을 자주 걷는다.


봄에는 죽은 것같은 마른 가지에서 연두빛 아기잎을 파르르 피어내는 나무를 보고 생명력이 솟고 또 땅 밑의 얼음을 뚫고 올라오는 야생화의 당당함에도 힘을 얻고, 여름은 하늘과 맞닿은 울창한 나무들이 서로 팔을 벌려 포옹하듯 그늘을 만들어서 인간을 다독거리는 자연의 세계에 마음이 감동되고 더위가 씻겨지며, 단풍이 드는 가을은 빨갛고 노란, 천연색의 잎새들로 장식된 화려함에서 천국을 보는 듯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겨울은 앙상한 나무가지를 덮은 하얀눈을 눈부시게 비춰주는 황홀한 햇님 덕분에 차거운 바람은 물러가고 따스한 기운이 감돌게 되는 길이다. 남편과 내가 즐기는 이 길을 우린 “행복의 길” 이라고 부른다.

오른쪽으로는 올려다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숲이 우거지고 맞은 편 언덕엔 약간의 경사를 타고 양이 풀을 뜯는 넓은 평원이 있는데 주 정부가 관여된 듯 메릴랜드 환경 트러스트란 싸인이 붙은 입구가 있고, 한참 더 가면 서너집은 긴 드라이브웨이에 우편함만 보이고 집이 안보이는 울창한 숲이 펼쳐있다.
길 중간쯤 옆으로 제법 깊은 시냇물이 흐르는데 오늘은 그 곳 돌더미를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가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폭포수의 물방울을 맞은 것처럼 마음이 뻥 뚫리고 정신이 번쩍든다.

길 위에서 우리는 눈과 비, 바람만이 아니고 사랑과 기쁨, 그리움과 슬픔 모두를 스치게 된다. 아직까지 걸어온 길이 결코 꽃길만이 아니고 경사진 길, 돌부리와 나무뿌리에 걸리는 험난한 길, 광야길, 무섭게 파도치는 바닷길, 짙은 안개길도 지났다. 영원할 것같은 길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안에 놓인 마음의 길을 걷고 있다. 영원한 길을 그리고 있다.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태어난 어머니 품을 그리워 하듯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까?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같던 어제 밤의 폭풍에서 이렇게 평온한 아침이 올 줄이야! 캄캄한 밤이 지나면 환한 낮은 반드시 오고,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 아픔이란 포장지를 벗기면 그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 담겨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누군가의 수고로 인해 TV방송을 듣고 신문을 보면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행복, 그 작은 일 하나하나에 감사하고 있다.
주위를 바라보면서 인생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주신 분, 낳아주신 부모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길 위에서.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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