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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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원철 선교사님

2023-08-17 (목)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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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철 선교사님이 세상을 떠났다. 나의 인생을 바꾸신 분! 나는 케냐와 이디오피아 변방 모얄레의 붉은 흙, 그분의 무덤 앞에 서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요한14:27>라는 성경 말씀을 되새긴다. 하늘이 주는 평화를, 이분의 삶을 통해서 보았고, 배웠고, 염원한다.

선교사님을 처음 만난 건 2001년, 나이로비 근처 가리오방기 빈민가로 치과진료 봉사를 떠났을 때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젊은 선교사(당시 39세)가 달려 나와 일행을 맞았다. 빈민촌에는 전기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LA에서부터 들고 간 이동식 치과장비 사용을 포기하고, 햇빛에 입속을 비춰가며 어두워질 때까지 진료를 했다. 평생 한 번도 치과의사를 만난 적이 없는 주민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섰다. 이선교사님은 열심히 나를 도와, 뽑은 치아를 양동이에 받아냈다. 어려운 치료를 하는데도 아이들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요?” 이선교사님이 대답했다. “이곳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냥 잘 참아요.”

한 소년에게 준비해간 항생제를 주면서 일렀다. “하루 세 번, 식사 후에 한 알 씩 먹어야한다.” 이선교사님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는 하루 한 끼 밖에 못 먹습니다.” 알고 보니 선교사님도 현지인들과 똑같이 한 끼 만 먹고, 똑같이 재활용된 옷을 걸치고, 그들 속에 어울려 ‘함께 살아가기’를 몸소 실천했으며 나중에 케냐 시민으로 귀화했다.


올해로 17번째 케냐를 방문했다. 선교사님이 없는 선교길은 쓸쓸하였다. 수학교사 출신 선교사님의 꿈은 아프리카 빈민가에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다. 빈민촌에는 전기도, 물도, 하수시설도 없다. 쓰레기와 사람이 같이 살아간다. 선교사님이 이보다 더 가난한 이디오피아와 케냐 국경지대 난민촌으로 사역지를 옮긴다는 꿈을 꾸던 중, 아들 인이(당시 15세)에게 뇌종양이 찾아왔다. 모두들 당장 큰 병원에 찾아가라고 하자 그분은 말했다. “나는 회교도에게 복음을 전하러 온 사람입니다. 그 병원은 회교도인들이 운영하는 곳인데 어찌 내 아들 살리러 그들을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혹여 아들 목숨을 구한다 한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떻게 전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죽음을 코앞에 두고 미국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길이 열려 인이는 병상에 누운 채 비행기를 탔고 곧바로 뇌종양 진단과 함께 수술이 이루어졌다. UCLA 메디컬센터 병상에서 어린 인이는 살려주시면 선교사의 길을 가겠다고 서원했었다. 수술을 맡았던 백인 의사는 ”당신 같은 선교사의 아들을 환자로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도 케냐 선교사였습니다.”라고 고백했었다.

한편 치료비가 쌓여가자 이선교사님은 병원 행정담당자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저는 선교사입니다. 지금은 많은 돈을 갚을 힘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조금씩 갚게 해주십시오. 내가 다 못 갚고 죽으면, 나의 아들이 계속해서 그 빚을 갚을 것입니다.” 얼마 후 담당자가 선교사님께 알려왔다. “치료비는 한 푼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당신과 당신 아들이 미국 정부를 위하여 훌륭한 일을 많이 해주십시오.”

선교사님 부부와 아들(35세, 선교사), 딸 이엘(32세, 선교사)은 다시 케냐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생명 다하는 날까지 사역했던 지금의 모얄레 지역에 크리스천 학교를 세우기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지금, 졸업생 윌리엄과 자슈아는 신학대학을 마치고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선교사님이 전도했던 회교도 몰루는 회심하고 자신의 토지를 모두 내놓았는데 그 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도 있었다. 몰루가 얼마 후 다른 회교도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때 선교사님은 눈물을 보였다. 이번 방문길에는 라끼 마을로 몰루의 유족들을 찾아 위로하며 순교 당한 몰루와 선교사님을 추억했다. 그 땅에 지금은 크리스천 초등학교와 교회가 세워져있다.

선교사님은 살아있는 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 암 수술도 여러 차례. 몸은 야위어가고, 갑상선 수술로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중에도 사역을 이어갔으나 지난 7월, 말라리아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나이로비에서 영영 눈을 감았다. 평소 원했던 대로 학교 한편에 잠든 그의 묘비에는 스와힐리어로 이렇게 새겨져있다. ‘하나님의 사람, 원철 리’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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