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잊혀진“반공 학생의 날”

2025-11-24 (월) 07:53:56 테렌스박/아시안아메리칸 유권자연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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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은 대한민국 반공 학생의 날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반공 학생의 날”은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적출되었다. 신의주 반공 학생 의거는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5,000여명의 학생들이 소련군의 만행과 북한의 공산세력에 항거한 반공 시위였다.

11월 23일을 반공 학생의 날로 1957년 대한민국 정부가 지정한 이유는 십대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공산체제를 부정하며 일어선 세계최초의 학생 의거였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주검과 피로써 자유의 대가를 치른 희생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반공을 위시로 세워진 조국의 건국 이념을 후손에게 계승하고자 하였음이라!

때는 1945년 8.15. 해방을 맞이하자 소련군과 북한의 사회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민족이 살길이라며 북한동포를 현혹하고 있었다.


보안유지를 위하여 왔다는 소련군은 부녀자와 처녀를 마구 겁탈하며, 시민들을 약탈하고, 급기야 용암포 공산당원이 평안장로교회 장로를 공개 처형하자,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신의주 주변의 학교들을 결집하여 반공을 외치며 공산세력에 항거하였다.

소련군은 전투기를 앞세워, 기관총, 자동소총 등의 총기로 학생들을 무차별 학살하였으며, 항거의 주동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있을 때, 의거의 핵심 인물이었던 부친의 나이는 19살이었다.

잡히면 즉결처형이라, 탈출을 위해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부모 형제에게 작별 인사도 못 드리고, 당일, 학생들과 막연히 영락교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뿔뿔이 흩어져 남하하였다.

남하한 학생들은 한경직 목사의 소개로 김 구 선생으로부터 “적산가옥”을 인수받아 수백명이 함께 합숙하며 남한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 공산당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데 기여하고자 서북청년학생단을 결성하였으며, 부친께서는 서북청년단 학생 대표로서 반공 투쟁에 앞장섰었다.

반공투사들의 모임이 필자의 가족이 살던 집에서 있을 때, “비내리는 고모령”을 동지들과 함께 부르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부친께서는, 훗날 두고 온 가족의 정황을 파악하였으나 반공을 위해 순국한 동지들과 뜻을 함께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북한 땅을 밟지 않았다.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을 겪은 후, 잿더미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며, 잘살아보자고 몸부림치던 격동의 시대에, 북괴는 대학가에 주사파를 잠입시켜 겉으로는 민주화를 외치었으나 내면적으로는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권을 장악하였고, 이 세력은 급기야 사회 각 분야를 장악하였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무지한 집단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윈스톤 처칠은 말하였던가. 민족의 행복과 후세의 번영을 위한다면 대한민국 국민과 해외 동포는 깨어 일어나야 한다!

잊혀진 ‘반공 학생의 날’ 8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한번3.1절 운동, 신의주 반공 학생 의거 와 4.19혁명에서 울려 퍼졌던 정의로운 십대, 이십대의 함성이, 아니 온 동포가 함께 일어나 혼돈의 대한민국을 일 깨워 주는 정의의 횃불이 되어 줄 것을 고대한다!

<테렌스박/아시안아메리칸 유권자연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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