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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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쓰는 마지막 편지

2023-08-10 (목) 박석규 /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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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이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껴본 것은 육친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 셨을 때였다. 그런데 아내와의 사별이 이렇게나 짙을 줄은 차마 몰랐다. 떠나는 사람은 괴로움 없는 천국에서 안식 하겠지만 외로움과 그리움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이었다. 마누라가 운명하던 병원의 응급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조그마한 손을 잡고 “여보”하고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마누라가 땅속에 묻히던 날, 이것이 영원 속으로 간다는 걸 실감했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렸을 때 들었던 상여꾼의 슬프고 구성진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토록 멀어져간 운명의 순간, 같이서 지내온 반백년의 세월이 떠올랐다. 쓴맛 단맛을 겪어가며 살아왔던 그세월을 이제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지난날 처가집에 갈 적에는 논길을 가다가 신발을 벗고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흘러간 세월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머리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기억들은 따뜻한 불씨로 화로 속에 남아 있다.

국민(초등)학교 졸업식 노래의 마지막 가사처럼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무엇인가도 모를 슬픔에 젖어 울먹이며 불렀던 노래- 이제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때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마누라가 암으로 투병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우리는 자식이 없잖아. 누가 우리 무덤에 찾아 올 사람이 있겠어. 그러니께 화장을 해서 뿌려버려…”


나에게는 애틋하고도 가슴 아픈 소리였다. 그 속에 잠겨져 있는 숨은 뜻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난 지금도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14년을 하루같이 마누라의 묘소를 찾아가고 있다(우리는 아이를 어렸을 때 일찍 보내고 이곳 미국에 와서는 무엇이 잘못되어 자궁 수술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결코 잉꼬는 아니지만 잉꼬 소리를 들어가며 살아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매일 운동을 시켜야 하겠기에 집에서 가까운 호숫가에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날 하루는 나에게 하는 말이 “여보, 내가 없더라도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사진만은 버리지마 잉" “그래 그렇게 할게” 지금 나의 집에는 곳곳에 둘이서 찍은 사진이 진열되어 있다. 아마도 사진을 버리면 내가 자기를 아주 떠나는 것으로 알았던 것 같다.
마누라가 떠나간지 14년이 되었지만 난 아직도 칫솔통에서 마누라의 칫솔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나도 이젠 90을 바라보는 늙은이다. 이젠 나도 내가 잡고 있는 세월을 스르르 놔야할 때가 가까이온다.

조카들에게 부탁한다(이곳에는 생질조카가 하나 있고 처 조카들이 여러 명 살고 있다).
내가 죽거들랑 화장을 해서 마누라와 함께 합장을 해다오. 그리고는 너희들이 살아가다가… 살아가다가… 어느때 문득 우리 생각이 나거들랑 꽃 한송이 들고 고향동산을 찾아와 무덤가에 앉아보렴. 그때 우리는 맑은 바람되어 반갑게 맞이할게.

<박석규 /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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