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 동안 지속되었던 소수계 대학 입학 우대정책에 대한 제동이 연방 대법원 보수 대 진보의 6대3으로 판가름 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번 판결의 소수계 의견을 낸 3명 중 한명인 소토메이어 대법원 판사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평등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기회의 평등함을 주자는 것이지 결과의 평등함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는 의견이라 생각된다.
우선 보수, 진보를 떠나 임기가 영구직인가의 타당성을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시발점인 국가 창설 시점에선 국가의 기본 틀이 정해지고 그에 따른 지속적이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법을 제정, 집행하는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거를 통해 끊임없이 개선, 쇄신해야 됨이 요구되지만 국가 구성원간의 이해 충돌시 법 해석을 하는 사법부는 거의 진리에 토대를 둔 초월적, 불편부당한 양심이 요구됨으로 구성원의 자질을 엄격한 잣대로 선발해야 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한번 선발되면 임기를 영구적으로 의뢰, 보장하는 취지이다.
모든 제도나 이념들이 처음 취지와는 세월이 흐르면 전혀 다르게 작동됨을 우리들은 보게 된다.
대표적인 예는 회교의 코란의 해석과 실천이 아닐까 한다. 처음 창시자의 바람이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 각 계파의 지도자들의 이해충돌로 수많은 파로 갈리고 대립된 오늘날의 현실이 아니겠는가.
다시 돌아가 미국 대법원 판사 임기 영구제가 과연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면에서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 올씨오, 이다.
거의 성스럽고 불편부당함이어야 할 직책이 잘못된, 편향된 인적 선발의 과오로 그 기능을 처음 취지의 영구 직에 대한 회의를 자초하고 만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하겠다. 성스러움에 보수가 어디 있고 진보가 어디 있겠는가.
온통 자기만이 최고의 선인 양 착각하는 아집과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 자리에 부적격한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순 없기에 차선책으로 그들의 임기를 제한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10년이건 20년이건, 아니면 연령제한, 아니면 의견개진은 허용하나 투표권은 없는, 마치 추기경 제도처럼, 하여튼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 판결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 최선의 선택을 해야 됨이 대법원 판사들의 임무일진데 지나친 이념과 편견에 사로잡힌 대법원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선 임기의 제한제를 도입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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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