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점의 히스패닉 코너에서 어릴 적 국민학교 교과서에 나왔을 법한 친근한 그림을 봤다. 제품명도 흥미로운 잉카파리나.
코카콜라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잉카 콜라(Inca Kola)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어서 잉카파리나(Incaparina) 역시 잉카의 후예 페루에서 만든 걸로 넘겨짚었다. 만져보니 가루 제품인데 안데스의 산삼이라고 한국에서 광고하는 마카 가루라도 들어갔나 싶었다.
포장 뒷면을 보니 과테말라 제조. 그럼 마야 어쩌고 그렇게 나가야 되지 않나. 그런 궁금증이 들어 찾아보는데 위키피디아며 구글이고 좀체 찾기가 어렵다. 결국 유엔의 한 보고서에서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잉카 제국이 아니고 INCAP 이라는 기관의 명칭에서 나왔다. Institute of Nutrition of Central America and Panama. 중미 및 파나마 영양 기구. 여기에서 정책적으로 개발한 국민 영양제에 가루라는 스페인어 아리나(Harina)를 붙인 것이다.
우유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동 건강을 위해 머리를 짜낸 결과물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대신할 식물성 단백질을 찾아 영양 균형을 추구한다는 취지이니까 특정 상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복지 개념이다. 예를 들자면 인디오 원주민들의 식생활을 고려해서 라임 처리한 옥수수가루 마사, 들깨, 목화씨, 토룰라 효모, 키쿠유 풀잎 가루를 혼합한 형태가 처음 개발되었고 성분은 다양하게 변화를 줄 수 있다.
율무차처럼 옥수수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먹는 아톨레(Atole) 형태의 음료로 먹는다. 중미에선 여름에는 찬물에 타서 청량음료로 마시는 오르차타가 있는데 그건 미숫가루라고 보면 된다.
이게 1960년대의 소산이다. 사정은 우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눠주는 미제 가루우유의 기억이 여전한 중에 에비오제, 원기소가 아동 영양제로 등장했었다.
오늘의 한국, 쌤쏭 안드로이드 폰과 현다이 자동차 그리고 BTS로 화려한 지금의 한국 역시 제3세계의 빈국이었던 시절. 우리가 국민교육헌장 앞세울 때 국민건강을 위해 만든 국민식품.
잉카파리나는 기대에 못 미친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듯하다. 과테말라와 콜롬비아 정도에서 명목을 유지했을 뿐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정부의 강력한 뒷받침 없이 싸고 좋은 물건을 보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건가. 오히려 인도에서 잉카파리나의 개념을 도입해서 만든 Bal-Ahar(영양가 있는 아동식이라는 명명)는 정부의 무상제공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우유가 싸고 과다영양이 오히려 문제인 미국 땅에 잉카파리나가 들어오는 것은 어릴 적 추억의 맛을 찾는 어른들이 있어선가. 왠지 라면 땅을 연상케 하는 촌스러운 포장을 보며 옛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