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월요일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요즘 세간의 화제인 챗지피티 (ChatGPT) 관련 기사가 실렸다. 불과 작년 11월에 등장한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벌써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를 접하기 바로 전, 그렇지 않아도 챗지피티에 관해 인공지능 관련 일을 하는 둘째 애 그리고 내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학생들과 대화를 가졌던 참이었다.
내가 인공지능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불과 7년 전의 일이다. 2016년 당시 세계 최고의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5연전을 벌일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인공지능 개발 초기여서 이세돌의 승리는 모두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결과는 알파고의 4승 1패. 인공지능에게 인간이 손을 든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 다음 해에 알파고는 당시 세계 1위 기사였던 중국의 커제에게도 3전 전승을 한 후 바둑에서 은퇴했다. 인공지능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 후 바둑에서의 인공지능은 더욱 발전했다. 현재는 세계 1위 기사인 신진서와 최고 인공지능과의 수준 차이가 두 점과 세 점 사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급수로 본다면 2-3 급 차이다. 이제는 프로 기사들을 위시해 많은 바둑팬들이 인공지능을 사용해 바둑을 공부한다. 더 이상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무의미 하며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말이다.
챗지피티 프로그램은 단답식의 질문부터 긴 설명을 요구하는 정보 전달식 답변,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답변, 문장 완성, 번역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사용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숙제나 에세이, 논문 등을 작성할 때 챗지피티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교육위원직 복귀를 준비하는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전에 처음으로 직접 사용을 시도해 보았다.
우선 챗지피티 사용의 문제점에 대해 간단하게 글을 써보라는 요청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바로 술술 써 나가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써 보라고 했더니 약간 다른 형태로 또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글에서 10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가운데에는 불공평한 이점, 개인적 발전 저해, 표절 위험, 사실 확인 결여, 학습 성취도의 감소, 학생과 교사 사이의 관계 훼손 등이 포함되었다.
다음으로 성경의 산상복음에 나오는 ‘빛과 소금의 비유’ 말씀을 소재로 한인동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설교문을 500단어 이내로 준비해 보라고 했다. 역시 바로 되었다. 이민국에 제출할 편지와 장학금 수여식에서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5분 이내의 인사말도 영어와 한국어로 작성해 주었다. 내친 김에 나의 지난 번 본보 칼럼을 영어로 번역해 보라고 했더니 번역에 30초도 채 안 걸리는 것 같았다.
이런 챗지피티의 기능을 보면서 사용에 과연 어떠한 제한을 두어야 하나, 아니면 긍정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학생들과 교사들을 유도해야 하느냐에 대해 깊히 고민을 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또한 그에 대한 결론 도출을 오래 지체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내가 1970년대 중반에 미국에 이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충격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공부했을 때 숫자 계산은 암산이나 종이에 직접 숫자를 적어가며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수업이나 시험 때 계산기 사용이 허용되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랐다. 화학 시험 시간에도 원소주기율표가 그냥 벽에 걸려 있는 채로 시험을 보고 복잡한 물리, 화학 공식들도 외울 필요가 없었다. 그런 공식들은 그냥 주어졌고, 적용하는 방법만 터득하면 되었다.
상대를 이길 수 없다면 한 편이 되라는 말이 있다. 그처럼 우리가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그러한 인공지능을 잘 사용해 사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인공지능 사용을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보다 훨씬 더 빨리 변화하는 인공지능 문화에 대한 충격에서 깨어나 적응 훈련부터 조속히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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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