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의 5월은 참 싱그럽다. 멀리 산과 들에 나가지 않더라도 동네 거리를 품은 연초록 세상에 눈과 마음이 맑아진다. 목련과 벚꽃이 떠난 자리에 피어난 꽃분홍 철쭉, 마른 가지 위에 작은 접시처럼 도도하게 떠있는 도그우드 꽃들의 향연. 가만히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포근해지는걸 보면 분명 ‘mother nature’ 맞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5월이 ‘가정의 달’로 뽑힌 듯하다. 미국에서도 ‘마더스 데이’부터 ‘파더스 데이’까지의 5주를 ‘가정의 달’로 정하고 가정의 소중함과 의미를 되새기는 5월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5월에 연말처럼 상담 문의가 급증한다. 가정과 가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가족에게 눌렸던 아픈 상처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듯 하다. 어떤 이에게는 가정이 힘든 몸과 마음이 쉬는 베이스 캠프라만, 어떤 이에게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상처의 공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이 신체적인 학대나 버려지고 방치되는 상처를 받은 곳은 길에서 만난 낯선 이가 아니라 바로 가까운 가족으로부터이다. 존중과 돌봄을 받아야 할 배우자에게 언어의 폭행, 구타, 때론 목졸림을 당하거나, 인정 받고 격려 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폭력과 비난, 또는 무관심을 받았다.
술만 먹으면 집안 살림을 때려부수고 엄마를 구타하던 아버지를 피해, 어린 동생과 이웃집에 피신했던 어린시절 레파토리는 생각보다 많다. 안타깝게도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익숙한 환경을 만드는 사람에게 끌리고,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어 가정폭력의 수레바퀴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패턴을 알아차리고 꾸준한 상담과 훈련을 받으면 그 패턴을 깨고 나올 수 있는 힘과 희망이 있다.
관계가 나쁜 남편 흉을 어린 자녀에게 쏟아내며 신세한탄하던 엄마에 대한 기억들도 자주 다뤄진다. 외로운 마음을 내 편인 자녀에게 넋두리하면, 그 때는 위로가 될지 몰라도 자녀가 받는 부정적 영향력은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가족치료에서 그 자녀는 ‘심정적 배우자’로 불리는데, 그 자녀는 엄마의 안경을 통해 아버지를 보게되고, 그렇치 않아도 존재감이 약한 아버지에게 커다란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 성장한다. 딸인 경우 왜곡된 남성상을 가지고 남성 상사와 갈등하거나 연애하기 힘들기 쉽고, 아들인 경우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 삼각관계로 끼어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기 쉽다.
남존여비 사상으로 딸과 손녀는 천대하던 조부모에 대한 상처, 장애인 형제자매에 밀려 방치된 듯 자라는 등 이들 모두에게 가족은 아픔이며 상처며 분노의 대상이다.
“난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싫어하던 아버지 모습이 내안에서 보일 때 느낀 자괴감과 절망이 힘들어서 상담을 찾았다”던 내담자의 고백이 떠오른다. 가족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이 당신에게 아픔이라면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가정의 달에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언제까지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상처로 자신을 괴롭히렵니까?”
미움과 분노를 품고 살면 결코 행복하고 건강할 수 없다. 누군가를 미워해본 사람은 알지만 그 것은 몸 안에 독소를 만들어 스스로를 해친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상처의 ‘신체화’를 호소한다.
‘용서해야죠'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없다. 용서는 흘러넘치는 것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과거의 상처때문에 현재를 살고 있는 소중한 나를 자해하는 것을 이제 멈추길 부탁 드린다. 그 것은 머리로 하는 ‘Let Go'가 아니다. 이제는 힘을 가진 성인이 된 내가 힘 없고 상처입은 내면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위로해주는 ‘프로세스’이다. 상처를 준 가족도 그의 부모에게 학대 당한 피해자임을 받아들이면 그를 향한 작은 긍휼함과 측은함이 피어날 것이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나’를 위해 이제 그 사람을 놓아주자.
내면에 가득한 분노와 아픔을 대면하고 상처 준 그 사람을 ‘굿바이’ 애도하며 떠나보낼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책이나 강의, 또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느리지만 선물처럼 다가오는 치유를 경험할 수 있고, 그때 비로서 상처준 사람에게 새로운 관계로 ‘헬로우’할 수 있게 된다.
가정의 달 5월 아침에 도종환의 시를 가족이 아픔인 당신에게 바친다.
“흔들리잖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도 작은 꽃들을 피워온 당신 안에 한 그루 치유나무를 발견하길 소망하며.
MonicaLee@daybrea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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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 심리 상담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