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8일로 불패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478주년을 맞는다.
1598년 12월 16일 남해 관음포(일명-이락포)에서 도망치는 왜적들을 가로막으며 분전하시던 중 애석하게도 적의 조총에 전사하실 때까지 불과 54년의 짧은 일생을 경영하신 것이다.
그러나 공의 거룩한 애국 애족의 정신과 불가사의한 전술은 불멸의 신화가 되어 오늘날에도 대한인의 맥박으로 되살아 나셔서 세계 무한경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때마침 금년 탄신일은 5천년 단군 유사이래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께서 우리의 혈맹이요 세계최강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당당한 외교 협의를 위해 워싱턴에서 마주 앉게 되셨으니 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1970년대 한국 철강 산업 개척의 거인 고 정주영 회장 지갑속의 오백원권 지폐 뒷면에 인쇄된 거북선 그림으로 영국의 금융 신용평가회사 롱 바톰 회장을 설득하여 포항 미포만 모래사장에 조선소를 지을 계기를 만들어 주시어 오늘날 우리 대한이 세계 해양 수송선박의 왕좌를 굳건히 지키며 철강 군사 무기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니 실로 충무공의 음덕은 마를 날이 없다.
그러면 충무공의 마음쓰심은 어떠하였기에 수백년 후세의 먹거리까지에 이어지는 것일까? 공의 마음의 창이라고 할수 있는 ‘제목 없는 시’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이를 풀이 해보면 첫째 연은 선조 임금이 왜군을 피해 평양 의주등 북쪽 국경으로 피난을 가시는 바람에 지역사령관인 이순신 장군으로서는 그 급박한 국난 상황에서 중앙의 지시를 받지못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시는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계신다.
둘째 연은 장수의 본분인 적을 제압할 대책은 이미 마련이 되어 있지만, 거리를 떠도는 피난민의 비참한 수난을 구제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마음 아파하고 계신다.
셋째 연은 당시의 수군지역은 추위가 더욱 혹독하여 입은 갑옷에 서리가 엉키는 고통과 피로 물든 전장의 참상을 개탄하고 계신다.
넷째 연은 비참한 전란을 빨리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시냇가에서 돌베개 베고 평화로운 세상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내 비추었지만 이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정리해 보면 이 짧은 시문에는 나라의 공복으로서 국법과 제도에 따라야 하는 원칙주의, 장수로서 국민을 보호하고 사랑해야할 책임, 전쟁수행의 고통과 인명 손실을 반대하는 반전주의 사상, 그리고 전쟁없는 세상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화인의 꿈을 지닌 참된 민본주의 사상이 공을 겨레의 지극한 사표로 삼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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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원 / 이순신 숭모인,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