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않은 길’이란 시에서 처럼 젊은날에는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게으름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모든 것은 때가 있어 지나고 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아쉽고 아깝다. 얼마남지 않은 이들이 가장 후회하는 게 가족을 위한 직장, 자식들 뒷바라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해보지 못한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화센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나이든 이들이 죽고 살기로 진심으로 다닌다.
공원이 된 골프장을 차로 지나간다. 코로나19로 모든 게 멈췄을 때도 공원은 개방되어 아침마다 카트로 다니던 길을 걸으니 몸이 가벼워 18홀을 2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었다. 오리 똥을 피해가며 작은 숲에서 산딸기도 따먹고, 입술이 새까매지는 버찌도 주워먹고, 잔디깎는 카트가 사그리 베기 전에 따온 많은 들깻잎은 삼겹살과 함께 뱃속으로 들어가고, 보라색 엉컹귀, 솜털 날리는 할미꽃, 노란 민들레, 질경이 나물도 된장에 무치면 맛있었다. 그러다 비, 바람, 눈, 더위, 추위로 빼먹고 이유없이 쉬다가 점점 다리가 아프게된 나는 반만 돌고 잘 걷는 올케는 한바퀴 돌아온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올케가 사라지는 그 길을 나는 시에서 처럼 한참을 내려다보며 이럴줄 알았다면 하면서 혀를 끌끌 찬다. 그나마 미국은 대개 어디든지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딱 주차장 거기까지인것같다. 곰이 나오는 산 속으로 한참을 걸어가 오두막 캠핑장에서 별을 보며 모닥불을 피자는데 이 나이에 무슨 텐트? 웬 개고생이라던 나는 결국엔 애팔래치안산맥 트래킹을 하는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아쉬워했다.
컨트리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졸지 말고 히피치마랑 부츠 신고 흔들어 볼걸, 맘마미아 뮤지컬에 야한 휘파람을 날리며 악쓰며 떼창을 부를걸, 무릎에 칼자국 남기 전에 똥고가 보이는 반바지를 입고, 우람한 팔뚝 민소매로 물병 차고 동네에서 폼 재며 뛰어 볼 걸 하고 싶었지만 강제로 못한 것도 있다. 온 몸이 딱딱하지만 줌바춤을 너무나 하고싶어 일찍 가서 맨 앞에 있는 나에게 샘이 처음엔 웃더니, 점점 표정이 바뀌어 맨 뒤로 가서 나보다 별로인 뚱뚱한 아줌마를 따라하라더니, 나중에는 나만 벽거울 보며 하라더니 지네들만 신나게 빙빙 돌아가는 날 너무 억울하지만 포기했다.
이제는 그 교실 옆에서 아직도 눈은 째려보며 나는 재활치료용 자전거를 돌리며 묵주기도를 외운다. 흥! 그래도 뛰느라 니네는 덥지? 나는 물개처럼 니네보다 수영은 훨씬 잘 한다며 위로한다. 이제는 할 수 없는 한국의 추억들, 남산 계단을 남친이랑 가위 바위 보로 오르기, 관악산 암자에서 비빔밥 먹기, 파도와 함께 몽돌 자갈밭 뛰기, 산속 바위에 새겨진 석불의 미소, 물결치는 보리밭과 함께 걷는 섬진강 매실나무길, 고생 끝에 울릉도 성인봉에서 만난 보라색 흰색 도라지꽃밭, 첫 관람객으로 들어가 호젓히 즐기는 박물관.
자고로 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해야겠다 나중에 이렇게 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내 글을 제일 먼저 읽어 주는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러니까 고스톱을 칠 때도 되건 안되건 일단 못 먹어도 고를 해야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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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